아버지 그리고 행복했던 기억 조각
여행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와 부딪히는 순간이 많다. 그럴 때마다 이런 건 하지 말자. 위험한 건, "무서워서가 아니야, 다칠 수도 있잖아." 하며 다독이고 피해서 가곤 한다. 일상에서도 그렇다. 그래도 스스로를 넘어서는 순간 또 다른 세계와 만난다.
이건 스위스 산을 내려오다 발견한 다리를 보고 도전하려고 가서 찍은 사진이다. 때론 어느 순간 용기가 샘솟는 순간이 있다. 겁쟁이인 나에게 용기 생긴 순간이었고 그 용기에 저 다리를 건너 두려움과 직면하고 내면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진은 내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용기를 주는 부적 같은 사진이다.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민박과 음식점을 하셔서 유독 철마다 갔었다. 해서 동네마다 아는 분들이 많아 지리산 자락 아래의 뱀사골, 남원, 화개장터 등 여러 곳에 자주 놀러 가기도 했다. 그 큰 놀이터는 모든 게 새롭고 즐거웠다. 그런데 여름철 갑작스러운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 오도 가도 못하고 구조되어 살아 나온 적이 있다. 문제는 내가 높지도 않은 통나무로 된 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기도 무서워하는 겁쟁이라는 사실이다. 산에는 가끔 외나무다리가 통나무로 된 곳이 있다. 관광객들보다 주민들이 다니는 곳에 돈을 들여서 무언가를 연결하거나 짓는 것보다 통나무를 잘라 연결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별로 높지도 않고, 떨어지면 다리 삐끗할 정도인 그 다리를 건너는 게 무서웠다.
다리를 건너기까지 한 10번 아니 20번 넘게 두 걸음도 겨우 갔다가 돌아오고 못 가겠다고 주저앉았다. 그런데 물이 불어난 날 계곡 위 바위에 아빠하고 동생, 친구들하고 6명 정도가 서있었다. 초등학교 막 들어간 나이였다. 건너기 위해 줄을 놓치면 물에 휩쓸려 갈 것 같은 상황에 바위 뒤 나무에 연결한 줄을 잡고 공중에 매달려 가라니, 울었던 거 같다. 친구들은 원래 그곳에 사는 아이들이 많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넜고 동생도 무사히 건넜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줄을 잡고 매달리는데 손이 떨렸다. 사람들과 구조대원은 물이 더 불어나면 큰일이 난다고 채근하는 중에도 아버지는 내 뒤에 서 계셨다. 그러다가 위험하다고 판단하셨는지 직접 줄을 잡고 매달리며 아버지 배 위에 매미처럼 꼭 붙어 있을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사람들은 더 위험하다고 했지만 그러면 할 수 있다고 했다. 아빠는 생각하시더니 몸에 밧줄을 감아 나를 묶었다. 그제야 안심하신 듯 줄을 잡고 건너셨다. 나는 눈을 감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줄을 잡고 튼튼하게 해 주셨고 아빠와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반대편에 도착했다. 용기 있는 아빠. 그렇게 어쩌면 모자라지만 나도 배웠다. 누군가의 사랑으로.
용기가 부족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말해주셨다. 용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또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서 사용하면 그건 가짜라고 허세라고 한다고, 용기는 스스로 두려움을 직면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안 무서운 척을 할 필요도 없다고 무서운 게 당연한 거라고 오히려 무섭고 걱정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척하다 보면 언젠가 더 다치게 될 거라고 하셨다. 그냥 언젠가 용기가 생겨서 두려움에 직면하고 씩씩하게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북돋아 주셨다.
여행을 하면서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두려움을 극복했고, 혼자서도 무언가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용기였다. 아는 이라고 하나도 없는 곳에서 이 다리를 건너면서 허세가 아닌 용기를 배웠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게도 생겼다 용기. 나도 모르게 어디서 온 줄도 모르는 용기로 낯선 곳에서 어떤 곳에 닿기를 바라며 간절히 내딛는 저 걸음을. 저 마음을 일상에서 잊지 않기를 스스로 다짐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고 싶다. 당신도 용기 내어 주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한걸음 내디뎌 닿기를 바란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 조각들, 이런 기억들이 남아 미웠어도 그 사랑을 놓을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