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용서를 구하는 마음

by 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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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몇 년 전 홀로코스트로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슈투트 가르트 근처 언덕 위 세워진 십자가를 방문했을 때이다. 옆 나라 일본과 다르게 독일은 자신들의 잘못을 사죄하고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가르치고, 또 그들을 기리기 위해 베를린에도 큰 추모 공원을 세웠다. 베를린 추모공원의 커다란 돌기둥 사이를 지나면 점점 좁아지는 시야와 어두워지는 명암이 가스실로 가는 기분을 느끼기 위한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하던데, 그곳도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다른 도시들에도 이 장소처럼 스스로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조형물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방문하게 된 곳이었는데 마침 사진 속에 십자가 왼쪽 아래 수녀님도 기도를 하시더니 한참을 십자가를 보시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기다리다가 양해를 구하고 찍게 되었다.


궁금했다. 수녀님이 이곳까지 올라 기도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해서 다시 정중하게 여기서 기도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누군가의 죽음에 용서를 구하는 일,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다시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워진 십자가 곁에 서서 그저 그 일을 벌인 민족의 한 사람으로 당신들을 기억한다고 용서를 구하고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도 하신다고 하였다. 나이가 지긋하신 수녀님은 무척 온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사죄를 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잘못을 했다면 응당 사죄를 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죄를 하면 우리에게는 보상이 따른다. 마음의 평화, 그것을 통해 다시 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려는 올바른 마음들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옆 나라처럼 당연히 수많은 이에게 사죄하고 속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 하는 파렴치한 일이야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바가 없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작게는 가족에게 마음에도 없는 한 마디, 별 의미 없었던 한 마디로 마음 상하게 하고 사과해야 하는 시점을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많다. 내가 그렇다.


사진 찍으며 내가 느낀 것은 적절한 시간에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해 사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버지와 그랬다. 내 멋대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조금 의견이 다르다고 아빠와 한 말싸움 끝에 자존심 부리다가 끝내 사과하지 못했다. 한동안 어색한 사이가 지속됐다. 그런데 어느 날 잘못하지도 않은 아빠가 내게 먼저 전화를 하셨다. 나는 너무 미안했다. 아빠도 전보다 마르고 약해지고 있을 때였다. 당신도 상처를 받았을 텐데 자식이라는 이유로 속상하고 전전긍긍할 나를 생각해 먼저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덤덤하게 잘 지내라 이야기하는 아빠의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무뚝뚝한 목소리에. 나는 자존심에 사과할 용기조차 없었다는 생각에 너무 죄송해서 울어버렸었다. "제가 죄송해요."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얼마 뒤에 나는 이제 다시 아빠와 통화할 수 없었다. 직감하셨던 걸까.


살면서 우리는 많은 잘못과 실수를 하고 사과를 해야 할 일을 만들 수 있다. 그럴 때 진심 어린 사과와 용기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당신에게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적어도 용기를 낸다면 우리가 하지 못한 사과에 대한 후회나 구해야 할 용서를 구하지 않는 뻔뻔한 후안무치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지나가버린 시간을 기억하며 나처럼 평생 두고두고 아파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용기가 필요하시다면 힘내서 한 걸음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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