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때문에 조직검사가 필요합니다

늙어가는 건 다 같으니까 괜찮은데고장 나는건 싫어.

by 지한

세상이 참 거지 같다고 느꼈다. 병원에서 나오는 순간 무서움과 두려움 같은 감정 이외에 나는 욕지거리가 목 끝까지 차올라서 참을 수 없었다. 나름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남들 다하는 거 MT, 여행, 휴가 같은 것들은 다 포기하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빚 갚는다고 힘들어도, 그래도 웃고 살자고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아무 생각 없이 온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암 일수도 있으니 검사가 필요합니다. 조직 검사를 해야지 알 수 있으니까 되도록 빨리 합시다."

말도 안 돼. 아니겠지. 수 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복잡하게 만들었다. 엄마한테 동생한테도 말할 수 없다. 아닐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괜히 마음고생만 같이 하니까. 나만 알고 있자. 스스로 다짐하며 조직 검사 날짜를 따로 잡고 받기로 했다. "암"이라는 말이 주는 공포가 상당했다. 누군가 암은 더 이상 불치병도 아니고 꼭 죽는 병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보다 살아서 가족한테 더 이상 마음에 상처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뭐 해본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암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나를 덮쳤다.

갑자기 나오게 돼서 내가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유럽이었다. 검사를 예약하는데만 최소 한 달 이상, 검사 결과를 아는데도 또 며칠이 걸린다. 졸지에 생 이별까지 하고 있는 어머니께 이런 말을 전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걱정인데 암이라니. 결국 검사받을 때까지 빠르게 해서 2개월이 걸린단다. 처음 일주일은 잠이 오지 않았다. 사라지는 내 삶보다 남아있을 이들의 삶이 더 걱정이었고, 내가 버틸 수 있는 아픔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더 말도 안 되는 소식이 나를 덮쳤다. 어머니가 쓰러지셨다고 한다. 동생이 전화를 걸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다고. 안 괜찮았다. 내 사정은 이제 머릿속에서 지워졌고 어머니가 먼저였다. MRI 검사에 의사 진료를 다 받고 보니 뇌 소 혈관성 치매라 진단받았다고 한다. 또래에 비해 경과가 좋지 않지만 수술은 필요하지 않고 약을 먹으면서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해주었다. 이 날 내 하늘이 무너졌고 나는 또 울었다. 이제 좀 편안하게 걱정 없이 사시려나 했는데, 빚은 끝이 보이고 이제 그냥 하고 싶은 거 하시면서 즐기길 바랏는데 갑자기 치매라니. 하늘에 욕을 했다. 나한테 다 주고 어머니는 그냥 두라고. 왜 이러는 거냐고. 불행 따위에는 총량도 없이 몰빵 하면서 사는 거냐고. 쌍욕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더 미치게 만들었다.


검사를 했고 오늘 결과를 받았다. 양성이라고 한다. 악성이 아니어서 냉동치료랑 필요한 치료를 받기로 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내 아픔이나 죽음 따위는 이제 관심 밖이었다. 차라리 어머니가 주신 이 몸의 어느 부위라고 드려서 나을 수 있는 병이었다면 기꺼이 웃으며 드렸을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병이 어머니를 갉아먹을까 두려웠다.


오늘 어머니가 한 말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난 늙어가는 건 다 같으니까 괜찮은데 고장 나는 건 싫어."







작가의 이전글행복의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