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행복은 사전적 정의로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는 명사이며 불행의 반대말이라 정의되어 있다. 어렸을 때, 행복은 그저 부모님이 좋은 옷을 사주시거나, 신형 핸드폰 아니면 가지고 싶은 것을 가졌을 때, 좋은 성적을 받아 칭찬받았을 때처럼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행복이라 생각했다. 사전적 정의처럼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어야 행복한 것이라 여겨서인지 그렇게 행복은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그래서 더 좋았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행복은 늘 멀었고 어째서인지 그 반대인 불행은 너무나 가까웠다.
불행을 느끼는 건 사소하지만 너무 많았다. 엄친아들과 비교당하거나, 성적을 잘 받으려 발버둥 쳐도 위에 누군가 있는 현실. 어딘가에 부딪쳐 다치거나 누군가와 사소한 말다툼, 지겨운 아르바이트, 갚아도 끝없는 빚, 반복되는 실패한 연애에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고, 진상 부리는 직장상사, 무언가 먹고 싶어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계산하려고 보니 모자란 내 잔액 등 말하자면 끝이 없지 않을까. 불행은 늘 가까웠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나한테 행복의 기준이 바뀌었다. 자기 위안이나 방어 일 수도 있으나 행복이 더 가까웠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더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바꿔 말하면 불행을 느끼며 사는 게 지긋지긋해서 만들어낸 변화였을까. 어쨌든 그로 인해 삶은 더 안정적이 되었고 편안해졌으며 불행을 조금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한테 행복이란 이제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 그런 평범한 날이다. 어렸을 때처럼 더 이상 빚쟁이가 집으로 찾아오지 않아서 행복하다 느꼈고, 아르바이트를 구해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으면 행복했다. 집에 누군가가 컵을 깨지 않거나 컵을 깨도 다치지 않으면 좋았다. 월급이 들어오면 좋았고 빚을 갚아서 빚이 줄어드는 걸 보면 그렇게 좋았다. 그냥 그렇게 오히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고 행복해졌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니 행복한 날이 많아졌다. 가족과 함께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사히 편안히 하루를 보내고 동생과 콜라에 치킨과 함께 먹는 순간이 좋다.
예전에 엄마는 집에 등기가 오거나 편지를 보는 게 트라우마였다. 아버지가 만든 빚으로 하루가 멀다 하게 편지가 오면 다 빚이 얼마이고 국가에서는 압류를 하겠다는 내용들의 편지뿐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편지가 오면 보지도 않고 쌓아두었다. 매번 볼 때마다 쌓이는 금액에 스트레스받고 아픈 것보다 외면을 선택하셨다. 아버지가 보고 해결하시라고 건네셨다. 나도 그랬다. 그걸 보고 자란 나도 편지를 볼 때면 가끔 무슨 내용인지 불안하고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한 잘못도 아닌데 내가 모르는 무언가 불행이 배달된 것은 아닐까 하며 두려웠다. 그래서 이제 멀리서 나는 엄마에게 이쁜 엽서에 편지를 쓴다. 이메일로 그냥 써서 보내면 되지만 그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해드리고 싶었다. 더 이상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 배달된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해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편지를 쓰며 행복을 바라고 있다. 지금도. 당신의 하루도 행복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