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뜻하지 않은 행운

by 지한


표가 생각보다 비쌌지만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한 번 보자고 한껏 무리한 티켓을 가지고 경기 당일 축구를 보러 갔다. 전철 타고 경기장 가는 길은 무언가 설렘이 있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땅 아래를 다니는 지하철이라는 의미보다 기차가 더 어울리는 객차들과 기찻길은 실제로 독일과 스위스 등 다른 유럽 나라로 연결되는 길로 같이 사용되서일까. 열차 창문으로 흐르는 풍경은 키 높은 건물보다는 키 작은 건물들이 많고 시원하게 뚫려 지평선이 보이는 평지와 경작지가 펼쳐진다. 눈앞에 탁 트인 시원한 풍경이 나를 사로잡았다. 무언가 숨이 좀 더 잘 쉬어지는 느낌이랄까. 지평선이 멀리 보이는 논과 밭, 하늘이 어우러지는 모습 덕분인지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이 실감 났고 이 열차가 어디로 나를 데려다 줄지 알면서도 설레었다. 나도 드디어 해외축구를 직관한다. 스포츠를 좋아해 축구를 선택했다. 말이 안 통해도 몸으로 뛰는 스포츠 관람은 어렵지 않으니까. 그날 찍은 사진이다. 한국에서 보는 것과 달리 손에 닿을 듯이 가까운 경기장과 축구에 미친 사람들이 평일에도 뿜어내는 열기, 힘찬 응원가에 더해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 생생한 곳이었다. 무슨 말인지 다 알지 못하지만 홈팀이 질 때, "괜찮다. 힘내라!"는 응원이 나 또한 힘나게 하고 목 터져라 부르는 노래가 가슴을 뜨겁게 했다.


기차를 타고 경기장 근처 역에 도착했다. 온통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를 새긴 유니폼 입은 사람들 천지라 길을 몰라도 눈치껏 졸졸 유니폼 입은 사람들을 쫓아가니 경기장 앞이었다. 예매표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니 축구팀 굿즈들이 널려있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우아아 와와와. 근데 유니폼 하나 사기에도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구경하는 게 어디냐 싶어서 입어도 보고 탈의실에서 사진도 찍고 혼자 세상 신나게 즐겼다. 입어보고 사진 찍는 건 돈 드는 게 아니니까. 구경하고 좌석을 찾아 나서는데 맥주를 판다, 더구나 감자튀김까지 있었다. 너무 먹고 싶어서 아껴야 하는 신세를 잊고 홀려서 주문하고 결제를 하는데, 맙소사 현금밖에 되지 않는단다. 남이 먹는 음식을 먹고 싶어 쳐다보는 거지같이 불쌍한 신세가 되었다. 혹시 몰라 카드는 들고 왔는데 이럴 줄 모르고 현금을 두고 왔다. 시계로도 결제가 되는 시대에 현금밖에 안 받는다니. 진짜 너무 아쉽고 서운해서 자리를 못 뜨고 한참 왜 안되냐고 묻고 서있었다. 결국 뒤에 줄줄이 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국제적 망신과 민폐로 남고 싶지는 않아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나라 잃은 표정으로 너무 멍하니 남의 맥주를 보고 서있었던 걸까. 독일인 두 사람이 갑자기 다가왔다.


"너 한국인이야?"

"응, (어떻게 알았지??) 무슨 일인데 그래?"

내가 말했다.

아니 "카드로 결제하려고 하는데 안된데. 이게 말이 돼?"

"아. 고장 났다고 하더라."

"아~ 진짜? 현금을 안 가지고 왔어. ㅜㅜ" 그래서 그랬구나 사과 시계로도 결제가 되는 시대에 참 나.

"그래서 못 먹어? 너 뭐 먹으려고 했는데??"

"축구에는 맥주지. 맥주하고 감튀 하고 먹으려고 했지."

"야. 기다려봐."


그러더니 가서 맥주하고 감자튀김을 더 사 왔다.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지 손에 든 거나 다 먹지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앞으로 내밀더니 먹으라고 준다. 너무 당황해서 뭐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멀리서 온 손님한테는 원래 대접하는 거라고 축구 즐겁게 보라면서 웃으면서 간다.


"여기 왔으면 무조건 맥주는 먹어야지. 맛있게 먹어. 좋은 경기 보고."


이런 친절이라니 너무 당황했다. 달려가서 그럼 전화번호 달라고 며칠 뒤에 만나서 주겠다고 했더니 그냥 가라고 한다. 축구팀 응원가를 부르면서.


"우리가 만약에 한국 가서 널 만나거나 나중에 너 같은 사람 보면 도와줘." 하며 쿨하게 간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친절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어려움에 처해 당황한 나를 보고 손 내밀며 웃어주고 자기 나라에 잘 왔다고 반겨주는 이 친구들이 있는 나라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원래 살다 보면 이렇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내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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