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에펠탑 가는 길.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에서. ㅡㅜ
이날 일을 겪기 전까지 평생 한국에 살며 소매치기는 그냥 단어로만 존재하는 전설적인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다. 영화나 영상 속 낭만적인 프랑스의 도시,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아름다운 패션의 도시, 그러나 상상과 달리 지하철은 어찌나 냄새나 나던지 첫인상이 상상에 비해 최악이었다.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가지 못했고 닿지 못해 단지 아름답고 좋은 것만 있을 거라 착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래도 어찌어찌 블로그에서 본 대로 공항에 내려 지하철 타고 숙소를 찾아가는데, 설마 설마 했지만 혹시나 해서 몇 번이나 캐리어와 매고 있는 가방을 챙겼고 지갑도 확인하며 가고 있었는데 기분 탓인지 유난히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둘러싸는 느낌을 받았다. 검은색천에 화려한 색깔의 실로 브이넥 티셔츠에 무늬가 수놓아진 아프리카 문양 티셔츠, 시간에 바래 해어진 청바지에는 거무튀튀한 얼룩들이 잔뜩 묻었고 피부는 티셔츠의 검은색보다 더 검고 선명하며 찐득하게 녹인 초콜릿 같은 피부에 덩치 좋고 튼튼해 보이는 인상 쓴 남자와 FILA라고 써져있지만 뭔가 글자가 이상하고 원래는 하얀색이었을 것 같은 검은색이 되어가는 얼룩덜룩한 잿빛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작은 남자, 아프리카 스타일 머리를 한 화려한 여자 등 5명 정도가 있었지만 큰 소동 없이 별일 없이 잘 내리고 호텔을 찾아서 잘 체크인했다. 왜 인지 그 순간이 잊을 수가 없다.
근데 아차! 체크인하려고 보니 가방 앞 주머니에 있던 지갑이 없다. 뭐지? 분명히 있었는데, 지하철에서 있었고 가방도 잘 닫아 두었는데 지갑만 없다. 착각한 것인지 가방을 다시 다 뒤지고 재킷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없다. 털린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 살짝 부딪쳤는데 그때인가. 다행히 다른 가방들은 잘 닫아두어서 여권과 신분증은 가방에 있었고 현금 일부를 머니클립 형태의 지갑에 넣어두었는데 그대로 다 소매치기당한 것이다.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지만 현금을 나누어 가방에 넣어둔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입국 심사한다고 신분증이나 여권은 가방 안쪽에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울면서 웃었다. "다 털릴 수 있었는데 뭐 그까짓 거 얼마 안 털렸다." 하며 정신 승리로 마음을 달랬다. 그래도 화가 나고 속상했지만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를 만난 것으로 뭐 관람료나 입장료로 생각해야 하나, 앞으로 더 주의하라고 경고를 받은 것으로 생각해야지. 마음을 다 잡았다.
그렇게 체크인하고 들어가서 짐 풀고 걸어서 근처 관광지까지 가보기로 했다. 조금 멀기는 했지만 걷는 걸 좋아해서 위험하지 않으면, 눈가를 스치는 다른 외국의 풍경을 마주하며 그곳 공기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조심은 해야지 소매치기 경고를 받았으니까. 해서 혹시 모르니 여권을 챙기고 돈은 주머니에 깊숙이 꼬깃꼬깃 조금만 넣고, 어차피 그냥 구경만 하고 올 거니까 하고 나갔다. 유럽 길들은 우리나라 보도블록과 다르게 예전에 있던 그대로를 보존하기 위해 울퉁불퉁한 돌길이 많고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날도 좋았고 눈으로 보던 풍경이 바뀌니 모든 게 새롭고 다시 또 신기했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말도 안 되는 시련이 다시 닥칠 줄이야. 관광지로 접어들기 전에 인적이 조금 없었지만 별로 후미지다거나 위험한 구석은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반대편에서 10대 후반의 여자 아이들 6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별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이 엇갈려 지나가는 곳이 인도이니까. 그냥 유행하는 티셔츠에 평범한 긴 머리에 운동화,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질끈 머리를 묶고 담배를 물고 지나가는 듯하던 아이들, 그런데 한 거리가 2미터 정도 됐을 때인가. 갑자기 이 여자애들이 우리를 감싸며 달려들었고, (참고로 일행이 한 명 있었다.) 두 명이 각자 한 명씩을 껴안고 4명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30초 아니 5초도 지나지 않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를 밀고 지나가버렸다. 둘러싸는 순간 우리는 "뭐야?" "이거놔~~" "하며 힘으로 풀어내기 무섭게 웃으며 알리 없는 언어로 막 뭐라고 웃으며 비꼬는 듯 지나가며 뒤돌아 우리를 보는 이 무리를 보면서 말했다.
"야. 빨리 뭐 없어진 거 있나 확인해!"
"아. 맞다."
"우리 뭐 가지고 온 것도 없는데."
"돈은?"
"돈은 주머니 안에 작게 꾸겨 넣은 게 있는데."
"다행이다. 가자." 하고 있는데 6명 중에 한 명이 5미터 정도 걸어가다가 갑자기 소리를 내며 뛰어 다가오더니 1미터쯤 거리에서 우리한테 뭘 던지고 욕하듯이 갔다.
"뭐야?? 미친 거야??"
"여권이야. 우리 여권."
"뭐라고?"
진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하루에 두 번이나 전설적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 것으로 모자라 이런 일들을 겪다니. 달려가 얘들을 잡을까도 했지만. 결국 없어진 것도 없고 우리 여권은 다시 찾았다. 에펠탑이고 뭐고 그냥 숙소 가서 쉬어야 하나.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그래도 결국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을 보러 가서 찍은 저 사진이 남았다. 그래서 저 사진을 보면 그날이 생각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특정한 향으로 여행지의 순간과 느낌이 기억나기도 하지만 여행이 끝난 후에 나에겐 사진이 저 아름다운 에펠탑을 넋을 잃고 본 순간은 아스라하고, 영화처럼 소매치기들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여행을 하다 보면 불운이 찾아올 때도 있다. 예약해 놓은 투어에 비가 와서 못 가고 돈만 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비행기가 연착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소매치기를 만나거나 돈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좌절하며 살 수만은 없다. 그런 불운이 올 때가 있으면 뜻하지 않은 행운이 올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미워하며 경계하다가도 또 마음이 풀리고 같이 즐기며 산다. 세상사는 건 참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지만 그냥 그대로 받아넘기고 그 순간을 즐기면 또 살아진다. 이미 지나간 후회로 가득 찬 순간은 바꿀 수가 없지만 결국 내 마음만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아..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넣는 버릇은 고쳐야지. 그거 또 털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