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침대에서 심장마비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겨우 예순이 되신 나이였다. 아버지를 보내기에 일렀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고, 우리 관계도 다시 전보다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었다. 아직 할 말도 들을 말도 많았다. 원망도 많았지만 아버지가 여전히 삶에 필요했다. 그런데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심지어 나는 타국에서 들었다. 이 역시 잊히지 않는 순간 중에 하나였다.
생애 처음으로 전화기를 붙들고 오열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강타했다. 동생 전화를 받고 목소리에서 느꼈던 것 같다. 미친 듯 울음이 나와 도저히 멈추지를 않았다. 슬픔이 아픔이 온몸을 때렸다. 그 와중에 동생은 진정하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곁에서 동생을 지켜줬어야 하는데 엄마를 안아드렸어야 했는데.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며칠 전 심장이 안 좋다고 대형 병원인 삼성병원까지 가서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기에 더 그랬다. 진정을 하는데만 40분이 넘게 걸렸다.
서둘러 비행기표를 알아봤지만 한국은 직항으로도 14시간 이상이 걸리는 곳이었다. 심지어 그 날 비행기 편은 퍼스트 클래스 밖에는 없다고 했다. 일반인에게 퍼스트 클래스에 금액이라니 더구나 거리 때문에 가격이 인당 1000만 원에 달했다. 전화를 들고 대한 항공 직원에게 사정했다. 그럴 금액이 없다고 다른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지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얼굴만이라도 뵙고 보내드리고 싶다고 읍소했다. 제발. 다행히 착한 직원은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알아보겠다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금액도 시간도 최선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30분 만에 직원은 우리에게 가장 빠른 비행기와 금액을 고려해서 경유하지만 최고의 옵션을 찾아 주었다. 평생 못 갚을 빚을 그 직원에게 졌다. 몇 번을 감사하고 감사하다 거듭 말하자 직원은 아버님 잘 보내드리라고, 찾는다고 찾아 드렸는데 더 빠른 게 없어 오히려 죄송하다고 했다.
어떤 정신으로 어떻게 도착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착한 순간 연락한지도 모르는 친구가 공항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둘이 차 두대를 가지고 왔다. 둘 다 그냥 걱정이었으리라. 눈물이 났다. 일단 가야 한다고 차에 타고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연락도 못했지만 날 위해 와 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너무 고맙고 눈물이 나서 서있는데 다들 얼른 들어가 보라며 안으로 나를 밀어 넣어 주었다. 들어가기 무서웠다. 동생이 울었고 나도 울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잠시 무너졌다. 사진이 보였다. 웃고 계셨다. 너무 미운데 너무 아픈데. 아무리 미워한 순간이 많았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나를 구해준 순간도 있었으며 태어나게 해 주신 분이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영정 사진을 보고 울며 절을 했다. 늦었다고 죄송하다고. 어떤 일이 있었건 다 미안하다고 제발 꿈이라고 말해달라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이제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우리는 나아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왜 가셨냐고 듣지도 못할 물음을 계속 던졌다. 그 이후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화가 나고 슬픔이 덮치고 미안함이 나를 휘감았다. 감정의 폭풍우 같은 것이었으리라.
시간은 아무것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조금 더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팠다.
아버지는 결국 화장했다. 아버지는 평소 선산에 관리하시고, 가족을 사랑했으나 결국 우리는 화장하고 우리가 편히 볼 수 있는 곳에 모시기로 했다. 아버지는 동생과 같은 곳에 묻히고 싶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결국 아버지를 배신하고 빚을 남긴 그 동생은 장례식장 조차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형의 죽음에도. 난 이제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냥 남일뿐이다. 그렇게 했으니 행복해라. 내 눈에만 띄지 말고 제발.
한 동안 늘 기일이면 소주 한 잔을 들었다. 살아서 해드리지 못한 술 한잔 같이 해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서.
원망 따위는 이제 남지 않았다. 이제 미안한 뿐이다. 죽음은 내게 원망은 지우고 미안함과 후회만 남겼다.
보고 싶다. 미안해. 말 잘 들을 걸. 많이 아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