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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Jan 30. 2023

남편표 소시지빵

별 걸 다 하는 남자


어느 날 지인 한 분이 직접 구웠다며 소시지빵을 몇 개 가져다 주신 게 시작이었다.


가뜩이나 빵순이인 나는 오랜만에 '한국식' 빵을 먹게 되어 너무 좋아했고 그런 내 모습을 본 남편이 말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평소 요리를 잘하고 늘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해보는 그였지만, 베이킹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해도 웬만큼 맛이 나오는 요리와는 달리, 하나하나 계량해서 해야 하는 베이킹은 그의 요리 스타일과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요알못인 나는 ‘이걸 어디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요잘알인 그는 ‘이걸 어떻게 만들까’ 생각한다.

나는 그의 이런 사고 루트가 늘 신선하고 경이롭다.




베이킹 1차 시도


집에 없는 건 밀가루밖에 없다며 위풍당당 밀가루를 한 봉지 사온 금요일, 내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동안 그는 반죽을 만드는 것으로 베이킹 여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본 중에 기본인 우유와 버터도 없었다. 몰라서 안 사온 게 아니라, 우유 대신엔 집에 있는 크림을 넣고, 버터는 안 넣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 안 샀다고 했다. 역시 휘뚜루마뚜루 그의 요리 스타일다운 결정이었다.


재료도 다 없는데 계량컵과 저울 따위가 있었을까?


하지만 이렇게 준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그것도 처음으로 시도해 본 것치고는 맛이 그럴싸했다.


빵이 너무 두껍고 퍽퍽했던 1차 시도


다만 빵이 너무 두껍고 소시지가 큰 탓에 내가 아는 그 얇은 소시지빵의 비주얼이 아니었다.


남편, 미안한데 이 식감이 아니야.ㅠㅠ




베이킹 2차 시도


첫 베이킹 후 깨달음이 있었던 건지, 남편은 필요한 조리도구를 몇 개 사야겠다고 했다. 마트에 가서 계량컵, 저울, 그리고 좀 큰 베이킹 팬도 하나 구입했다. 물론 우유와 버터 등 첫 시도 때는 과감하게 생략했던 재료도 제대로 갖췄다.


집에 와서 반죽을 하고 그 반죽을 발효시키고 뚝딱뚝딱 빵을 만들던 그는 소시지빵만 하기엔 심심했는지 이번엔 파인애플빵까지 시도했다.


*파인애플빵
한국엔 소보로빵, 일본엔 멜론빵이 있다면, 홍콩엔 파인애플빵이 있다.

 

파인애플빵 비쥬얼이 별로지만, 맛만 있으면 되니까...라고 생각했다.


1차 시도 때 제일 큰 문제점이었던 빵의 두께와 소시지의 크기를 수정했다. 하지만 이번엔 빵의 두께를 너무 얇게 하는 바람에 옥수수와 양파 토핑을 얹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트위스트 해놓은 소시지 사이사이마다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결과는?

소시지빵은 나름 성공! 위에 케첩을 뿌려 먹으니 아침 한 끼 식사로 훌륭했다.


파인애플빵은 대실패!

할많하않... 앞으론 그냥 소시지빵만 해 줘.




베이킹 3차 시도


베이킹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데도 혼자 이것저것 하다 보니 그새 실력이 늘었더라. 소시지빵은 점점 시중에서 파는 것과 비슷해졌고, 자신감이 붙은 남편은 이 기세를 몰아 다른 모양도 몇 개 시도해 봤다.



꽃 도넛 모양으로 만든 건 마치 프레즐 안에 소시지가 들어있는 것 같은 맛이었고, 동그랗게 말은 빵에는 치즈와 스팸 등 다양한 재료를 넣는 시도가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엔... 다 맛있었다!!

이 남자 못하는 게 없네?



하지만 이거 고작 몇 개 만들겠다고 반죽하고 발효시키고 토핑 만들고 모양 잡아서 또 기다리고 오븐에 굽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길고 수고스러워 보였다.


이걸 마지막으로 당분간 베이킹은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려는데, 남편은 이젠 피자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신이 나서 덧붙였다.


"햄버거 빵도 내가 직접 만들까 이제?"


그리고... 지난 주말, 오전 시간 내내 열심히 이것저것 찾아보던 그가 대뜸 묻는다.


자기야, 나 이거 사도 돼?


키친에이드 반죽기, 제일 작은 게 40만 원 정도 한다.


그... 그만해 이제... 빵만 먹고 살 거니?

이 남자, 꽂혀도 제대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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