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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Feb 06. 2023

나도 한때는 에어로빅 유망주

주부반에 나타난 슈퍼루키


대학을 갓 졸업한 풋풋했던 시절,


당시 승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던 나는, 다음 채용 공고를 기다리며 매일 오전 3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는데, 그중 첫 한 시간은 오전 9시 주부님들과 함께 하는 '에어로빅 타임'이었다.


아주머니들만 가득한 반에 어느 날 20대 아가씨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했을 텐데, 이 아가씨 하루도 빠짐없이 너무 열심히 나온다. (그게 저예요)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에어로빅 클래스의 텃세는 꽤나 두텁다. 오래하신 분들의 텃세에 밀려 맨 마지막 줄 끄트머리에서 시작했던 나는, 젊은 나이에 맞게 동작을 익히는 속도가 확연히 빨랐다.


'내 자리는 절대 못 내줘'라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시던 아주머니들도 하나둘씩 "학생이 요 앞에 서~"라며 나에게 자리를 내주셨고, 그렇게 한 줄 한 줄씩 앞으로 이동하다가 마침내 '거울 바로 앞 첫 줄'의 멤버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단 몇 달 만에 이룬 성과였다.


자리 이동의 속도와 비례해 내 의상도 점점 짧아지고 타이트해지다가 나중엔 기어이 배꼽까지 드러내고 매시간 헛둘! 헛둘! 참 열심히도 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난 후 땀을 닦고 있는데, 같이 운동하던 한 아주머니가 나한테 조용히 다가와 물으셨다.


J 학생, 에어로빅 선생님 해 보는 거 어때?



보아하니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것 같은데 '꽃다운 아가씨'가 백수로 있는 게 안타까우셨던지, 에어로빅 수업에 이렇게 매일 도장을 찍을 정도의 열정이면 아예 강사가 되는 게 어떻겠냐는 생각을 하셨나 보다.


"아, 저 지금 따로 준비하는 게 있어서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으며 인사했더니 두 번 다시 같은 제안을 하시진 않았지만 내심 궁금하셨을 거다. 도대체 뭘 준비한다는 건지.


그도 그럴 것이 에어로빅이 끝나면 헬스를 또 한 시간 열심히 하다가 11시에 같은 분들과 또 수영 기초반 수업을 들었다. 하하하




그러던 중, 내가 다니던 센터에서 10주년 기념인지 뭔지 하는 기념일을 맞아 오픈하우스 행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알려왔고, 그 많은 에어로빅 클래스 중에 하필 우리 '오전 9시반'이 시범단 클래스로 선정되었다. 선생님은 나를 포함 5명의 '엘리트'를 뽑아 오픈하우스 시범단에 같이 참여해 줄 것을 부탁했다.


평균 나이 50대인 4명의 아줌마와

꽃다운 20대 1명의 아가씨.


나는 사람들 앞에서 타이트한 옷을 입고 팔다리를 힘차게 흔들 내 모습을 상상만 해도 너무 부끄러워 그 제안이 영 내키지 않았지만 '엘리트 그룹'으로까지 뽑힌 마당에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같이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나는 오랜 꿈이던 승무원의 길을 접고 여기저기 지원서를 내던 중 한 회사에 덜컥 합격을 한 상태였고, 다행히도 오픈하우스 행사 2주일 전에 첫 출근날짜가 잡히게 되어 시범단에서 자연스레 빠지게 되었다.


나의 에어로빅 스토리는 여기까지다.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요가 같은 정적인 운동보다 에어로빅, 줌바 같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흔들어제끼는 운동이 좋다.


대학생 때는 재즈댄스도 꽤 오래 배웠고, 벨리댄스나 플라멩코, 아님 살사나 차차차 같은 사교댄스도 배워보고 싶은데 마땅한 기회가 없었다.


당분간은 하던 발레나 열심히 해야겠지?




사진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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