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울었다
엄마, 나 남자친구 생겼어. 그런데 외국인이야.
엄마는 크게 놀라거나 하지는 않으신 것 같았다. A에 대해 간단한 신상정보 등을 물으시더니 잘 만나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상했다. 몇 달이 지나도록 그 친구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대학생 시절, 소개팅이라도 한 번 하고 집에 들어오면, 어떤 사람인지, 어디서 만났는지, 뭘 먹었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하나하나 다 물어보시던 엄마였다. “아이,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하면서도 나는 또 엄마가 물어보는 거에 조잘조잘 다 대답했었다.
처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걸 말하고 몇 달 뒤 엄마랑 통화를 하며 그 얘기를 꺼냈다.
"엄마, 그런데 왜 A에 대해서 더 안 물어봐?"
“안 궁금하니까”
“헉, 왜? 왜 안 궁금한데?”
"음... 우리 딸은 그 친구랑 곧 헤어질 거니까."
엄마의 대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곧 헤어질 거라니, 왜?
엄마의 생각은 이랬다. 나는 이제 곧 한국에 돌아올 테고, 그러면 둘은 롱디가 될 거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다가 결국 헤어지지 않겠냐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사이라면 굳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알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나는 잘 만나고 있는 우리가 엄마한테 응원받지 못하는 사이가 된 것 같아 속상했다.
"엄마, 나 이 친구 그냥 가볍게 만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나... 한국 안 돌아가고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
그 뒤로 별다른 얘기 없이 통화를 마쳤다.
몇 달 후 엄마 아빠는 나를 보러 올 겸 (남자 친구 면접도 하실 겸) 캐나다에 오셨다. 첫날은 호텔을 잡아 엄마 아빠랑 셋이 자기로 했는데, 엄마가 샤워를 하러 간 사이에 아빠가 말씀하셨다.
"J야, 너 그날 기억나니? 너 한국에 안 돌아오고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다고 얘기한 날."
"응 기억나."
그날 엄마 많이 울었어.
"엄마가 전화를 끊더니 갑자기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내리치면서 막 우는 거야. 그래서 내가 놀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울면서 그러더라."
"여보, 우리 J가 한국 안 온대... 한국 안 오고 거기서 계속 산대... 나는 우리 딸 두 명이 내 제일 소중한 보물인데, 그중 50%를 잃은 기분이야... 여보, 나 어떡해..."
나는 아빠의 얘기를 듣고 말문이 막히고 이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가 울었다는 것도, 엄마가 엄마의 보물 중 반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 남자친구에 대해서 물어봐주지 않는다고 엄마한테 서운해하지 않았던가. 잘 만나고 있는 우리를 곧 헤어질 사이라고 여기는 엄마에 대해 섭섭하다고만 생각했었다.
엄마는 그저 나를 잃어버릴까 두려우셨던 건데...
엄마한테 너무너무 미안했다.
며칠 뒤에, 우리 셋은 미리 예약해 놓은 패키지 록키여행을 떠났다. 버스로 하는 여행이라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고, 자리는 주로 아빠가 혼자 앉으시고, 나는 엄마랑 짝꿍이 되어 앉았다. 웅장한 록키산맥을 배경으로 거침없이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서 나는 엄마한테 그때 얘기를 꺼냈다.
"엄마, 그때 많이 울었다며? 미안해... 내가 내 행복 찾느라 엄마 외롭게 했나 봐."
엄마가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J야,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우리 딸이 어디에 있든 우리 딸 행복한 거 그게 제일 중요해. 설사 그게 엄마 곁이 아니더라도..."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어지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