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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Feb 25. 2022

꿰맨 손가락으로 랍스터 까주는 남자

예비사위 테스트 합격 비결


*지난 포스팅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밴쿠버에서 페리를 타고 빅토리아 선착장에 도착하니, A가 마중 나와 있었다. 부모님과 A가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만나자마자 나는 A의 옆구리를 콕 찍었고, 그는 마치 어떤 입력 코드가 들어간 사람처럼 그간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여, 저는 J의 난자칭구 A임니다. 오시느라 수거하셔씀니다."


그리고는 내가 한번 더 눈짓을 하자, A는 곧 부모님의 캐리어를 받아 들고 두 분을 주차해둔 차로 안내했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지켜보느라, 정작 그의 손가락에 밴드가 칭칭 감아져 있다는 것도 눈치를 못 챈 상태였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를 앞두고 A도 많이 긴장한 모양이었다. 내가 밴쿠버로 엄마 아빠 마중을 나간 날, A는 일하다 순간 정신을 팔았는지 커터칼로 뭔가를 자르다 왼쪽 검지 손가락을 깊게 베였다고 했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서 그 자리로 응급실엘 갔고, 다섯 바늘을 꿰맸다.


나는 그런 손가락으로 엄마 아빠의 캐리어를 씩씩하게 들고 날랐던 그의 모습이 생각 나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미리 말을 하지 왜 바보같이 아무 말도 안했냐고 타박하며 우는 내게 A가 대답했다.


“나 사실 응급실에서 손가락 꿰매고 있을 때도 네 생각이 제일 먼저 났어. 내 손 보면 너 울게 뻔하니까... 나 그게 더 걱정됐어. 내 찢어진 손가락보다 더.”


엄마 아빠한테는 그냥 가볍게 베인 정도라고만 얘기를 하자고 했다. 혹시 자꾸 신경 쓰시고 걱정하실 수도 있으니까... 나도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A와 나는 미리 생각해 둔 관광 일정에 따라 부모님을 가이드했다. 이너하버, 국회의사당, 엠프레스 호텔 주변을 걸었고, 차이나타운과 부차드가든도 갔다.


하루는 A가 저녁을 직접 차려드리겠다고 해서 그의 자취방에서 저녁을 같이 했고, 엄마 아빠는 딸의 남자친구 집에서 저녁상을 받아보시는 생소한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으신 듯했다.


같이 다니는 동안 나는 A를 부지런히 전담 마크하며 통역을 맡았는데, 가만히 보니 한국어를 못하는 A와, 영어를 못하는 엄마가 신기하게도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에겐 만국 공용어인 바디랭귀지가 있었고, 여기에 엄마의 콩글리쉬, A의 눈치코치까지 더해지니 내 통역이 없이도 티키타카가 되는 신기한 장면이 벌어졌다.


같이 며칠을 여행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부모님은 A를 예쁘게 봐주셨고, 나도 우리 부모님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는 그가 고맙고 예뻤다.


캐나다에서 유명한 The Keg Steakhouse


그러다 결정적으로 A가 점수를 딴 계기는 (당시 내 수입에 비하면 꽤 고가라 나름 큰 맘먹고 모시고 간) 스테이크 집에서 스테이크와 랍스터를 푸짐하게 시킨 후에 일어났다.


A는 그 다친 손가락으로 랍스터 살을 하나하나 먹기 좋게 발라서, 엄마, 아빠, 내 접시 순으로 놔주고, 음식은 입에 맞으신지, 부족한 건 없는지 특히 우리 두 모녀를 살뜰하게 챙겼다.


그런데 그 모습이 엄마 아빠 눈에 굉장히 맘에 드셨던 모양이다. 단지 여자친구 부모님 앞이라 점수 따려고 하는 가식적인 행동이 아닌, 늘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서 하는 행동이란 게 연륜 9단 부모님 눈엔 보였나 보다.


부모님 앞에서 자기 여자친구를 챙기는 모습이 사실 어른눈에는 다소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인데, 엄마 눈에는 오히려 당신 딸이 누군가한테 사랑받고 케어 받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 안심이 되셨던  같다.




짧았던 2주가 흐르고 엄마 아빠의 출국날이 되었다.


밴쿠버 공항에서 밤늦게 출국하는 일정이라, 밴쿠버 일일 관광까지 알차게 마친 후 공항 가기 전 마지막 일정으로 스탠리 파크에 들렀다.

밴쿠버 Stanley Park


출국까지 네다섯 시간 정도 남았을 무렵, 엄마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J야, 너희 둘 여기 와서 앉아봐. 엄마가 A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거든, 그것 좀 통역해봐.”


순간 ‘아니 그동안 바디랭귀지로 신나게 얘기하며 내 도움 하나 필요 없어 보이더니만, 갑자기 이렇게 진지하기 있기?’ 싶었지만, 엄마 얼굴을 보니 무언가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것 같았다.


조금 뜸을 들이시던 엄마가 이내 생각이 정리된 듯 말씀을 시작하셨다.


“A야, 우리 J는 엄마 아빠가 사랑으로 키운 너무나 소중한 막내딸이야. 예전부터 엄마의 바람이 하나 있었다면 우리 딸 나중에 만나는 남자는 돈, 명예, 지위 이런 거 없어도, 그저 우리 딸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껴줄 수 있는 사람,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우리 J는 여기 캐나다에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고 정말 혼자야... 알지? 여기서 우리 딸 지켜줄 사람은 그저 A 너밖에 없다. 너만 믿는다. 그리고...


우리 딸... 잘 부탁한다.



말하는 엄마도, 통역하는 나도, 듣는 A도 모두 울었다.



엄마 아빠가 출국장 게이트로 사라지고, 그날 밤 나는 몇 시간을 소리 내어 울었는지 모른다.


그때 엄마 아빠는 낯선 땅에 막내딸을 홀로 두고 돌아가시며, 어떤 심정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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