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은 신중하게
지난 20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사는 한 70대 여성은 캐나다의 한 커피체인점인 '팀홀튼 (Tim Hortons)'에서 홍차를 주문했다가 음료가 쏟아져 큰 화상을 입게 됐다며, 50만 캐나다 달러 (약 4억 8천만 원)의 손해보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녀는 컵을 들어 올리자마자 음료가 쏟아졌고 배와 다리에 2도 화상을 입었다며 이는 '차의 (너무 뜨거웠던) 온도와 컵의 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상처가 아무는 데 3주가 걸렸고 영구적인 흉터가 남았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기사가 뜨기 무섭게 대중들은 그녀를 향한 조롱의 메시지를 날렸다. “차가 뜨거운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자기가 쏟아놓고 누구한테 보상하라는 거냐"는 등의 얘기였다.
맞는 말이다. 뜨거운 음료가 뜨거운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것에 조심하고 대비하는 것 역시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컵에는 '음료가 뜨거우니 주의하라'는 경고 메시지도 적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개는 약 30년 전 맥도날드 사건과 너무도 닮아 있어, 너무 쉽게 그녀를 향한 비판에 동조할 수 없었다.
1994년 미국, 70대의 '스텔라 리벡'이라는 한 여성은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시킨 후 차를 운전하던 중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커피를 쏟아 3도 화상을 입었다며 소송을 걸었고, 결국 맥도날드는 270만 달러 (약 35억 원)를 물어주게 됐다.
이게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내용이었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그녀를 신랄하게 비판 및 조롱했고, 심지어 그녀의 이름을 따 “스텔라 어워드 (Stella Award)”라는 상까지 만들었다. 한 해 가장 어이없는 소송을 건 사람한테 주는 상이었다.
하지만 실제 사건 내용은 언론 보도와는 크게 차이가 있었다. 아래는 나무위키 등 여러 기사를 참조해 실제 사건을 요약한 내용이다.
사건 개요:
1992년, 스텔라는 손자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 커피를 시켰고 크림과 설탕을 넣기 위해 차를 주차했다. 그리고 자신의 허벅지 사이에 컵을 끼운 후 뚜껑을 열었는데 이때 커피가 쏟아지며 안쪽 허벅지와 엉덩이를 포함한 신체의 6% 이상에 3도 화상*을 입게 됐다.
3도 화상: 화염, 증기, 기름, 화학물질, 고압 전기 등에 의해 발생 가능한 화상으로 표피, 진피의 전층과 피하지방층까지 손상된 상태로 피부 이식이 필요함
이 사고로 인해 그녀는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술 및 치료를 받으며 회복 과정을 거쳤고, 2년이 지난 1994년 스텔라는 맥도날드에 2가지의 요구사항을 전했다.
1. (너무 위험하니) 커피의 온도를 조금 낮춰 달라
2. 치료에 쓰인 비용 2만 달러를 보상해 달라
하지만 맥도날드는 이러한 요구를 무시한 채 커피 온도를 조절하지 않았고, 스텔라에게는 겨우 800불의 보상금을 제공했다. 이에 그녀는 두 차례 더 맥도날드와 합의를 시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송 내용:
이에 스텔라는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을 걸었다. 맥도날드는 이는 전적으로 그녀의 잘못이라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소송 중 당시 맥도날드가 판매하고 있던 커피의 온도는 화상 위험이 있을 정도로 높은 온도이며, 비슷한 일로 이미 700명의 피해자가 있었지만 그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배상액은 최종 16만 달러로 결정되었으나, 이에 추가로 징벌적 손해보상금*을 내야 할 필요가 인정되어, 결국은 60만 달러 수준에서 합의가 되었다. (정확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징벌적 손해배상
한국에는 없는 제도로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거나 비도덕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제도. 이로 인해 기업이 추후에 비슷한 일을 또 저지르는 것을 막고 소비자 보호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기 위함이다.
언론 보도:
당시 언론과 대기업은 사실을 왜곡해서 뉴스를 퍼뜨렸다. 사실이 알려지면 향후 소비자가 기업에게 사후책임을 묻기가 쉬워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스텔라는 향한 마녀사냥은 계속되었고, 그녀는 오래도록 대중의 조롱거리로 남았다.
다시 팀홀튼 사건으로 돌아와서...
현재 팀홀튼 측은 고객이 뜨거운 음료를 주문할 때 이미 위험을 알 수 있었고, 사고 당시 조수석에 앉아있던 그녀가 휴대폰에 주의를 빼앗긴 탓이라며 과실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 우리는 사건의 정확한 경위를 아는 데 한계가 있다. 그 내용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성급한 판단은 잠시 유보해도 되지 않을까. 비판은 그때 해도 늦지 않다.
표지 사진 출처: unsplash.com
*이 글은 <헤드라잇>에도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