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딸딸~하게 취한 상태:
술기운이 올라와 약간 몽롱하며, 얼굴은 볼터치를 한 것처럼 발그스레하고, 용기가 두 스푼 추가되어 맨정신이라면 못했을 약-간의 미친 짓도 가능한 상태. 하지만 정신줄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며, 누구의 도움 없이도 집까지 혼자 갈 수 있는 그런 상태.
나도 딱 그렇게 취해보고 싶다.
그런데 나는 태생적으로 그게 안 된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아주 적거나 혹은 아예 없는 아빠의 체질을 그대로 물려받아, 소주를 한 잔이라도 마시는 날 내 상태는 다음과 같아진다.
1. 얼굴부터 목까지 불타는 고구마
2. 심장이 벌렁벌렁 바운스 바운스
3. 오바이트할 것처럼 속은 너무나 메스꺼운데
4. 정신은 아-주 멀쩡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술을 먹은 날도 여러 번 있었지만, 내 몸에서 나타나는 반응은 늘 똑같았다. 몸은 너무 힘들고 메슥거려 불편했지만 정신은 말똥말똥하고, 씨뻘개진 얼굴은 파우더를 아무리 두들겨도 가릴 수 없는 정도였으니, 용기가 두 스푼 추가되기는커녕 있던 용기마저 사라질 지경이었다.
그런 나한테 '알딸딸하게 취하는 좋은 기분' 따위는 늘 딴 세상 얘기였다.
알쓸정보
술을 마시면 알코올은 1단계 분해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뀌고, 2단계로 알데히드 분해효소에 의해 아세트산이라는 물질로 변해 배출된다고 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고 맥박이 빨리 뛰는 사람은 2차 분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며, 다시 말해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독소가 몸에 오래 남아 세포와 DNA를 손상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30%는 이 분해효소가 극히 적거나 없다고 하니, 이들에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독을 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전에 다닌 회계법인에서는 매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마다 인당 음료 쿠폰 2장씩을 나눠줬었다. 그 쿠폰으로 각자 바에 가서 원하는 걸 주문해 마시는 방식이었다.
첫 해 크리스마스, 나는 그 쿠폰 중 한 장을 소중히 들고 가 바텐더한테 음료를 주문했다.
크렌베리 주스 한 잔 주세요.
그러면서 들고 있던 쿠폰을 내밀었더니 그 바텐더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주스는 쿠폰이 필요없다"고 했다. 마치 어린아이한테 "꼬마야, 너한테 우유값은 안 받을게." 하는 것처럼.
(그 뒤로 매년 내 몫의 쿠폰은 술이 고픈 동기들한테로 넘어갔다.)
나도 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맥주 한 모금하고 캬~하는 그 시원함을 느껴보고 싶다. 위로가 필요한 친구와는 소주도 몇 잔 기울일 수 있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는 와인도 한 잔 곁들일 줄 알며, 기분 내고 싶은 날엔 칵테일 한두 잔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걸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결론: 그러니까 술 못 마신다는 사람한테 "한 잔만 해라", "계속 마시면 는다" 이런 X소리는 제발 그만.
사진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