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배고파서”
한 서울대 재학생이 1억 5천만 원짜리 바나나를 먹어 논란이 됐다는 뉴스가 연일 화제다.
이 논란의 주인공인 A씨는 서울대 미학과 재학생으로 지난 27일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위(WE)'에 전시되어 있던 한 작품 속 바나나를 떼어먹고 남은 껍질을 다시 벽에 붙이는 행동을 해 논란이 되었다.
아침을 안 먹고 와서 배고파서 먹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그가 한 대답이었다. 이후 그는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작품을 훼손한 것도 어떻게 보면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본인의 행동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미술관 측은 이를 그저 돌발적인 '해프닝'으로 여겨 별다른 손해배상은 묻지 않은 채 그를 돌려보냈고, 전시를 위해 새 바나나로 교체했다.
장난이라고 하기엔 성인이 할 짓이 아니다.
서울대생이라면서 그 똑똑한 머리가 아깝다.
손해배상이 아니라도 최소한 절도죄에 해당된다.
리움미술관은 그 학생에게 적절한 책임을 물어라.
기사에 달린 일부 댓글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학생의 그런 행동은 장난도 아니요,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도 아니요, 진짜로 배가 고파서 순간적으로 한 행동은 더더욱 아니다.
잠시 이 작품에 대해 알아보자.
<코미디언>은 이탈리아 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2019년 내놓은 '작품'이다.
바나나 한 개를 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은 모습에 대해 예술이냐 아니냐 그때도 말이 많았지만, 카텔란은 바나나 자체가 작품이 아니라 그를 보는 관념이 예술이라고 했고, 이 작품은 결국 12만 달러에 팔렸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비드 다투나'라는 한 행위 예술가가 전시장 벽에 붙어 있던 바나나를 떼어먹는 일이 일어났다. 태연하게 그 모습을 촬영까지 한 그 남자는, 왜 그랬냐는 질문에 "배고파서 (hungry artist)" 먹었다고 대답했다.
이 작품은 사실 이러한 관객의 반응까지도 예상 혹은 기대한 작품으로 그것을 먹는 행위 역시 또 하나의 예술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게 많은 예술가들의 입장이었으며, 미술관측은 별다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고 그 남자를 돌려보냈다.
실제로 다투나의 퍼포먼스 후 이 작품은 훨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고, 이후 엄청난 패러디가 쏟아지며 2019년 최고의 화제작 반열에 오르게 된다.
자, 감이 오는가?
벽에 붙어 있는 바나나를 떼어먹은 것, 그 모습을 촬영한 것, "배고파서" 먹었다고 답한 것, 바나나를 떼어먹는 행위까지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한 것, 그리고 그 영상을 직접 올린 것까지 모두 꼭 닮아 있다.
2019년에 있었던 다투나의 행동이 그의 주장대로 '행위 예술'이었다면, 4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모습을 조금의 변형도 없이 그저 똑같이 따라한 A의 행동도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차라리 그 바나나를 거꾸로 돌려놓거나, 바나나 한 송이를 걸어 놓거나, 사과나 오렌지를 대신 붙여 놓거나 했다면 어땠을까.
미대생으로서 어떤 이슈가 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거라면, 그렇게 해서라도 예술가로서 인정과 관심을 얻고자 했다면, 최소한 본인의 생각과 창의성을 넣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과연 이 퍼포먼스를 통해 A씨가 남긴 이미지는 다른 이의 행동을 생각 없이 답습한 '철없는 모방꾼'일지, 아니면 그러한 모방을 통해서라도 예술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시도를 해본 '미래가 기대되는 예술가'일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글은 <헤드라잇>에도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