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한 차별 (상)
회계법인 1년 차, 주니어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이것저것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데, 내 옆을 지나가던 동료 하나가 물었다.
어? 너 회사에 있었네?
그런데 왜 아까 미팅에 안 왔어?
그날 잡힌 미팅이 없었는데 무슨 얘기인가 싶어 물어보니, 오전에 주니어 미팅이 있었다고 했다.
'주니어 미팅'이란, 파트너 (회사 최고 직위)가 주니어를 모두 모아놓고 1년간의 피드백 혹은 요청사항 등을 듣는 자리였다.
다른 미팅도 아니고, '주니어 미팅'에 '주니어'인 내가 왜 초대를 받지 못했을까.
그 미팅을 소집한 파트너는 키도 크고 패션감각도 좋은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로, 그 당당한 모습이 참 멋지다고 늘 생각해 왔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나를 깜빡한 모양이었다.
같은 날 오후 화장실에 갔다가 손을 씻고 있는 L을 만났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참, J! 우리 아까 주니어 미팅했는데 내가 깜빡하고 너를 초대 못했어. 혹시 건의사항 있으면 나한테 따로 이메일로 보내 줘" 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랑 자주 같이 일하던 사람이 아니니 깜빡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2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시니어가 되었다.
어느 날 시니어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주니어 미팅과 마찬가지로 시니어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듣는 연례행사로, 역시나 파트너 L이 소집한 자리였다.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있는 회의실에 시니어 1년 차와 2년 차가 모두 모였다. 당시 좀 이례적으로 내 기수 동료들이 대부분 퇴사한 후라 시니어 2년 차는 나와 내 동기인 나타샤 두 명뿐이었다.
곧 파트너 L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다들 참석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한번 쭉 돌아보더니) 올해 시니어 2년 차는 나타샤 한 명뿐이네!"
나는 순간 표정관리에 실패했다. 아니, 그런 소리를 듣고도 한없이 밝게 웃고 있는 게 더 바보 같아 보였을까.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얼굴이 붉어져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는데, 동료 몇 명이 내 눈치를 보며 "J도 있잖아..." 하며 내 존재를 짚어주었다.
"아, 맞다 맞다, J도 있었지!"
2년 전 화장실에서 들었던 딱 그 목소리와 말투였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투, 그저 실수였다는 말투.
그날 미팅시간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시니어 2년 차는 나타샤뿐"이라는 그 말만 마치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2년 차는 나타샤뿐... 나타샤뿐... 나타샤뿐...
2년 전 나는 마냥 순진했고 그래서 뭘 몰랐고, 게다가 입사뽕에 취해있어 모든 게 다 좋고 에뻐 보이던 시절이었다. 모든 주니어를 미팅에 초대하면서 나만 빼먹은 건 단순한 실수였을 거고,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화가 나지도 섭섭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또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마음이 떠나기 시작했던 게.
*이어지는 글
사진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