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나는, 1학년 기초회계 수업에서 A를 받았다. 회계와의 산뜻한 첫 만남이었다.
아빠는 CPA 시험에 도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단순히 수업 하나에서 A를 받아와서 하시는 말씀은 아니었고, 수학을 좋아하고 성격이 꼼꼼한 나한테 회계사가 잘 맞는 진로가 되겠다 판단하셨던 것 같다. 나는 실제로 고등학교 내내 (문과임에도) 수학 과목을 제일 좋아했고, 또 잘했다.
그 어려운 시험을 내가?
쉽게 대답할 일은 아닌 것 같아 일단 좀 생각해보겠다고 답을 드렸다.
시간이 흘러 2학년이 됐고, 중급회계 수업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학점을 받았다.
친구들 중 몇 명이 CPA 시험 준비를 하겠다고 휴학했다가 내가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에 소리 소문 없이 복학했다. 시험에 떨어졌단 뜻이었다.
겨우 중급회계에서 학점이 떨어질 만큼 헤매고,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고 조용히 복학했다는 사실만으로, CPA 시험 도전 자체를 포기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쟤네들도 안 됐는데 내가 되겠어?
그런데 자존심은 있으니, '나는 어차피 안될 것 같아서 시작도 안 하겠다'라고는 못 하겠고, 아빠한텐 그저 '내 적성과 맞지 않는 길인 것 같다'라고 말씀드리고 회계사로 가는 길은 깔끔하게 접었다.
사실 시작도 안 했으니 접었단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 10년쯤이 흘러 나는 CPA 최종 시험 합격자 명단에 올랐다. 그것도 캐나다에서.
"아빠, 기억나? 아빠가 옛날에 나 CPA 하면 잘할 것 같다고 했던 얘기?"
"당연하지."
"세상 일이 참 신기해. 내가 그걸 한국도 아니고 여기서 이렇게 이루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렇게 나는 캐나다에서 회계사가 되었다.
*이번 매거진을 통해서는 캐나다의 CPA 과정 및 저의 CPA 시험 도전기, 회계법인에서 일한 경험 및 회계사의 진로 등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