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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Apr 26. 2022

여자 몸무게 50kg면 뚱뚱한 건가요?

벗어날 수 없는 다이어트의 압박


지난 주말 유튜브에서 이것저것 보는데, 처음 들어보는 프로그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가 욱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찾아보니 2018년에 짧게 방송하고 종료된 프로라는데 어떤 알고리즘으로 나한테까지 넘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제가 흥미로워 살짝 들여다봤다.


왼쪽이 남자 기준 통통, 오른쪽이 여자 기준 통통


남자 게스트들한테 통통한 여자 연예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강소라, 송혜교, 박보영 이름이 나왔다. 하하하


여자 몸무게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는데 대부분의 남자 게스트들이 "웬만한" 여자들은 다 50kg 이하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여기서는 프로그램 특성상 남녀의 대립구조를 위해 남자 게스트들이 조금 더 과한 답변을 내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몸무게, 허리 사이즈 등을 너무 터무니없게 알고 있다는 얘기는 전에도 종종 들은 적이 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한 국내 항공사 승무원 면접을 보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서류와 1차 면접을 합격하고 최종 면접장에 가니 당장 유니폼 입혀서 실무에 투입시켜도 될 것 같이 예쁘고 날씬한 '승무원상'의 지원자들이 대기실에 가득했다.


승무원 면접 기본 복장 -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 + 검정 구두


면접을 도와주시는 분이 대기실에 들어오더니, 면접 전에 먼저 한 명씩 나와서 키와 몸무게를 잴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준비 활동"을 시작했다.


키를 단 1mm 라도 늘리고, 몸무게를 100g이라도 더 줄이기 위한 처절한 마지막 싸움이 시작됐다. (물론 드물게 너무 말라 고민인 분들도 있긴 하다)


키를 늘리기 위해 그 자리에서 콩콩콩 점프하는 사람, 어깨를 주먹으로 탕탕 두들겨 늘려보는 사람이 대기실 여기저기 있었고, 몸무게를 줄이기 위한 제일 확실한 방법을 위해 화장실은 금세 지원자들로 가득해졌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일단 키를 늘리기 위해서 이것저것 하다가 내 차례가 거의 가까워졌을 때 화장실을 한번 더 갔다 오는 전략이었다. 시간을 잘 계산했다가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우리 전 조 타임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제자리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지원자들을 지켜봤다.


unsplash.com

한 명이 앞으로 나가 기계에 올라갔다. 키와 몸무게가 신속하게 측정이 됐고, 면접 진행 요원이신 분이 옆에 서서 숫자를 받아 적었다. 다행히 숫자판이 옆으로 있어 앞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한테까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신 청량한 기계음이 대기실 내에 울려 퍼졌다.


미달입니다


다음 사람이 나갔고 또 같은 기계음이 나왔다.

"미달입니다."


그다음 사람, 그다음 사람도 모두 "미달"이 나왔다.


내 차례가 되었다. 목을 있는 힘껏 잡아 빼고, 발뒤꿈치는 최대한 공기 중으로 띄운다는 마음으로 키를 늘려 숨을 참는 순간, 키 재는 물체가 머리를 콩! 찍고 다시 올라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숫자판을 확인해보니 키 165cm, 몸무게 53kg이 찍혀 있었다. 면접을 앞두고 운동을 열심히 한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계 소리가 울렸다.


정.상.입니다


얼굴이 새빨개졌다. 기계가 또박또박 뱉어내는 ‘정상’이라는 그 소리에 너무 놀라, 내 자리로 바로 돌아가 앉지도 못하고 후다닥 대기실 맨 뒤쪽으로 걸어가는데, 그 짧은 몇 초 동안 마치 대기실의 모든 지원자들이 나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 너도 들었지? 쟤 ‘정상’이래”



정상이 비정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어지는 미달 행진 속에 갑자기 튀어나온 그 기계음은 생경함을 넘어서서 당사자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최종면접에서 나는 결국 떨어졌다.


불합격의 원인이 단지 내 몸무게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또렷한 기계음에 나는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자신감을 잃었고, 어찌 보면 불합격은 예상된 결과였다.


혹시라도 승무원을 비하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그만큼 승무원이 하고 싶었고, 합격자 발표 날 불합격이라는 그 세 글자에 나는 또 얼마나 펑펑 울었던가.


하지만 어쩌면 그 세계로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정상인 내가 정상으로 살 수 있었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나의 부족함만을 보지 않아도 되게 됐다. 살을 조금 더 빼고 몸무게를 조금 더 줄일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내 키가 갑자기 170cm이 된다던가, 내 어깨와 힙 사이즈가 반으로 줄어드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고백하건대 내 몸무게는 고등학생 때 (중학생 땐가?) 이미 50kg을 넘었고, 아마 평생 그 이하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대신 나는 나의 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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