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귀한 죠리퐁
나는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한테 더 정이 많았다.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들으시면 섭섭하다 하시겠지만, 멀리 살아 일 년에 두어 번 뵙는 게 다였던 친가와는 달리, 어릴 때 한때는 한 집에 같이 살기도 했던 외가 쪽에 더 정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캐나다에 오고 자주 뵙지 못하게 되면서 할머니는 내가 눈에 어른거린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늘 그리웠다.
그래도 전화 연락은 자주 드리려고 노력했는데 070 전화는 일반 시내요금이랑 똑같이 나오니까 걱정 마시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혹시 손녀딸한테 국제전화 요금이라도 나올까 늘 마음 놓고 통화를 못하셨다.
오래전 한국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뵈었을 때의 일이다.
점심상을 물리고 과일을 먹으며 앉아있는데, 내가 공부한다는 걸 아시고 미리 준비해 놓으셨던 돈봉투를 하나 내미신다. 액수를 떠나, 나이 서른 먹은 다 큰 손녀가 용돈을 드리지는 못할 망정 되려 받는 건 아닌 것 같아, 안 주셔도 된다고 손사래를 쳤는데, 이건 무조건 내가 지는 싸움이란 걸 사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 봉투를 받아 들고, 집에 갈 때가 되어 짐을 챙겨 나오는 길, 갑자기 무언가 생각나신 듯 잠깐만 기다리라며 급하게 방에 들어갔다 나오시는 할머니 손에 죠리퐁 한 봉지가 들려있었다.
"이 할미가 뭐라도 더 주고 싶은데 줄 게 없다. 이거라도 가져가서 먹어라..."
가뜩이나 이렇게 인사드리고 나올 때마다 다음에 또 언제 뵙게 될지 기약할 수 없어 떠나보내는 할머니도, 떠나오는 나도 늘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이별을 하던 참이었다. 이번에도 서로의 촉촉한 눈가는 못 본척하고 대신 아쉬워하시는 할머니를 꼭 안아 드렸다.
늘 계속 주시기만 하시고, 나는 지난 삼십 년을 받기만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아쉽다고 부랴부랴 들고 나오신 과자 한 봉지...
나는 이 죠리퐁을 캐리어 한켠에 잘 담아 여기 캐나다까지 들고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이 담긴 봉투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죠리퐁.
슬퍼하지 말고, 혼자 가슴 아파하지도, 죄스러워하지도 말고, 무한히 감사한 마음만 오래오래 기억해야겠다.
할머니,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계셔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