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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May 30. 2022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펑펑 운 날


엄마는 칭찬에 인색했다.


우리 집은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화목한 집이었지만, 칭찬과 인정, 격려가 많은 집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내가 상장을 받거나 좋은 성적을 받아왔을 때도 크게 칭찬하지 않으셨고, 무언가를 앞두고 자신이 없어 주춤거릴 때도 "우리 딸, 잘할 수 있어, 엄마는 믿어" 따위의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한 적이 없으셨다.


나중에 커서 엄마한테 물어보니 행여나 우리가 버릇없는 아이로 클까 봐 예절과 겸손을 더 중시해서 키웠다고 하셨다. 이해는 된다. 회사일로 늘 바쁜 아빠 대신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엄마는 우리가 "바른" 아이로 자라는 데 더 신경을 쓰셨을 것이다.



남편은 칭찬에 아낌이 없었다.


정말 작은 것 하나에도 “잘했어”, "난 너를 믿어" 같은 얘기를 늘 아낌없이 했고, 어쩔 땐 단순히 잘했다는 말 대신 "I’m not even surprised, I told you you could do it!”, “난 네가 해낼 줄 이미 알고 있었어." 같은 멋진 말로 격려를 해주기도 했다. 연애 시절부터 그랬고, 결혼해서도 늘 한결같았다.


크면서 칭찬을 많이 들어보지 못한 나는 남편의 이런 칭찬 대화법이 처음엔 어색했다. 듣기 싫은 건 아닌데, 이런 칭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한결같이 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신감과 자존감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엄마와 통화를 할 때면 A가 어떤 말을 하는지 그게 얼마큼 고마운지를 자주 언급했다. 내심 엄마 아빠도 내게 격려와 인정의 말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평생을 유지해 온 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엄마, 나 이번에 시험 본거 A 받았어!"

"오~ 잘했네, 그런데 너 A 받은 거 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A+ 아니니?"


"아빠, 나 저번에 면접 본 거 최종에 올랐어!"

"지원자가 얼마 없었나? ㅋㅋㅋ"


그런데 늘 웃음으로 이어가던 이런 식의 대화가 어느 날부터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왜 그냥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그리고 먼 이국 땅에서 잘 해내고 있는 모습이 그저 자랑스럽다고 얘기해 줄 수 없을까. “엄마 아빠는 우리 딸 항상 믿는다”는 그런 따뜻한 말이 듣고 싶었다. 남편한테 늘 듣는 말이었는데, 엄마 아빠한테도 듣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특별하지 않은 대화를, 늘 하던 대로 주고받고 있는데, 엄마의 농담이 왜 그날따라 유독 자극이 됐는지, 왜 갑자기 그렇게 화가 났는지...... 그동안 켜켜이 쌓아왔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지며 엄마한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그냥 잘했다고 칭찬해 달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나는 그러고도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그대로 펑펑 울어버렸다.


나의 평소 같지 않은 반응에 엄마는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황당함이나 억울함을 들여다 보기엔 내 서러운 감정이 너무 컸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엄마랑 얼마간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아는데도 서운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걱정인 건 혹시나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가뜩이나 멀리 사는 엄마랑 조금씩 대화가 줄어들다 점점 멀어질까 두려웠다.



시간이 얼마 지나 남편한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 엄마랑 평생 친구같이 살았어. 그런데 이제 그거 못하면 어떡해?ㅠㅠ”

"그럴 일 없을 거야. 걱정 마" 

"아니야 지금 봐, 나 그때 이후로 엄마랑 벌써 2주간 통화도 안 하고 있잖아."


남편이 생각을 좀 정리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J야, 너는 지금 '자신감'이라는 집을 짓고 있어. 뼈대부터 시작해서 벽돌 하나하나 날라다가 짓고 있는데 아직은 그 집이 미완성이야. 그러니 조금만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너는 여태껏 공들여 지은 집이 무너질까 걱정이 되고 두렵겠지. 엄마의 농담이 유독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던 것도 그 때문일 거고.


그런데 너는 계속해서 그 집을 지을 거잖아. 벽돌 나르는 거, 페인트칠하는 거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그러다 보면 어느새 지붕까지 있는 튼튼한 집이 지어지겠지? 네가 하나하나 쌓아 올린 그 집은 웬만한 비바람, 심지어 폭풍우가 와도 끄떡없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네가 강해지면 다른 사람의 말에 덜 흔들릴 수 있어. 너는 그냥 하던 대로 네 집을 지으면 돼. 엄마랑 영영 사이가 안 좋아질 일은 없다는 거 내가 장담해.


그저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야

 


남편은 옳았다. 엄마랑은 금세 사이가 회복됐고, 나는 그 뒤로도 계속 나의 자신감 집을 지어 나갔다.


그리고 지금 그 집은 작은 비바람 정도에는 끄떡없을 정도로 예쁘고 견고하게 완성되었다.



사진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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