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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Jun 09. 2022

세 살 기억 여든 간다

라면 먹다가 불쑥 든 생각


나는 어릴 때 비염이 심했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는 마치 1년 365일 코감기를 달고 사는 것과 같아서, 내 코는 얼굴 중간에 있는 장식 이상의 기능을 못했다. 코로 냄새를 맡거나,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렇게 살면 삶의 질이 굉장히 떨어질 것 같지만, 나는 워낙 어릴 때부터 그랬던지라 그게 일상이었고, 그래서 이 모든 일이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다만 밥을 먹을 때는 조금 불편했다. 음식이 입에 있는 동안은 코로 숨을 쉬어줘야 하는데, 나는 그게 안되니 입을 벌리고 밥을 먹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먹는 속도가 느렸다.


특히 라면 같은 면 요리를 먹을 때면 반도 채 먹기 전에 남은 라면은 불어 터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식구들이 이미 젓가락을 내려놓은 후에도 내 몫의 라면을 남김없이 해치웠다.


그렇게 나는,

"불어 터진 라면도 잘 먹는 아이"가 되었다.





성인이 되고도 밖에서 라면을 사 먹을 일은 거의 없었는데, 어느 날 회사 사람들과 부대찌개를 먹으러 갔다가 라면사리를 추가한 날, 나는 신세계를 맛봤다.



(내 생각엔 아직 한참 더 끓여야 할 것 같은데) 다들 이제 먹어도 되겠다며 젓가락을 들길래 나도 따라 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는데, 처음 먹어보는 약간 설익은 듯한 라면이 그렇게 별미일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집에서 라면을 먹을 때마다 면을 끓이는 시간이 3분에서 2분, 2분에서 1분으로 점점 줄었고, 어느덧 나는 “꼬들면만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아직도 내가 불어 터진 면만 먹는 줄 안다.


벌써 몇 번이나!! 내 입맛이 바뀌었음을 말했는데도!! 엄마의 기억 속엔 불어 터진 라면을 후후 불어서 잘도 먹던 나의 어린 시절만 기억이 나나 보다...ㅎㅎ



세 살 버릇은 여든 안 가도

세 살 기억은 여든 가는 것 같다.



엄마, 내가 다시 한번 말하는데,
나 이제 불은 라면 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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