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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Sep 03. 2022

너는 애도 없는데 금쪽이는 왜 보니?

내가 금쪽이를 보는 이유


작년 어느 날이었다.


내가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는 걸 알고 엄마가 물었다.


너는 애도 없는데 금쪽이는 왜 보니?


애도 없는 "주제에" 그런 건 뭐하러 보냐고 하신 얘기가 아니라, 육아할 일도 없는 내가 이 프로를 꼬박꼬박 챙겨본다고 하자 엄마가 장난삼아 하신 말씀이었다.


글쎄,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소위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오은영 매직"을 통해서 변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나는 애가 없지만, 친구의 아이나 조카와 소통할 일이 자주 있어, 몇 가지 팁은 알아두면 유용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몇 회를 거듭해서 보다 보니, 이 프로그램은 더 이상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다. 금쪽이의 부모나 패널로 나오는 분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하기도 했고, 이미 성인이 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며 많은 공감을 보냈다.


사실은 우리 모두 금쪽이었다.




그중 내가 가장 공감했던 얘기는 14회 <자매간의 갈등 편>이었는데, 나는 내내 둘째의 풀 죽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오은영 박사님이 둘째 금쪽이를 따로 불러다가 "너 참 속상했겠구나" 하고 말하는데, 꼭 어린 시절 나에게 물어봐 주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언니가 있다.


언니가 초등학년 2학년이던 어느 날, 엄마는 언니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어머니, 땡땡이가 국어책을 못 읽어요."


한글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얼마나 수줍음이 많았던지 친구들 앞에서 책을 읽는 것조차 못하더란 얘기였다.


엄마는 그 얘기에 충격을 받았고, 그 원인을 당신의 육아 방식에서 찾으신 모양이었다. 둘이 싸우면 동생인 나 대신 으레 언니를 더 혼내던 엄마는 그날부로 언니를 너무 다그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불똥이 나에게로 튀었다.


어느 날부터 같이 싸우고 나면 엄마는 나를 더 혼냈다. 어느 날은 나만 혼내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억울했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보니 그때의 엄마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 흔한 유튜브나 오은영 박사도 없이 (지금 생각하면 그저 한없이 어린) 20대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하는 육아가 "정답"인지 이리저리 참 많이도 헤맸을 것이다.


고민도 하고 걱정도 하고 자책도 해가면서.


하지만 그 어린 나는 혼란스러웠다. 가끔은 ‘엄마는 언니를 더 사랑한다’고 느꼈고, 그에 맞춰 더 기세 등등 나를 약 올리는 언니가 밉게 느껴진 날도 많았다.




금쪽이를 보면서, 혹시 엄마도 이걸 봤는지,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다 지난 일인데 굳이 들춰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가 금쪽이 얘기를 먼저 꺼내 온 것이다. 요즘 그 프로를 즐겨 보신다며...


그리고 나는 (하지 말자 내내 다짐했던) 그 질문을 기어이 던졌다.


"엄마, 그 프로 보면서 우리 어릴 때 생각도 했어?"

"했지."

"어떤 생각?"


네 언니 생각이 많이 나더라.
언니가 안쓰럽단 생각...


나는 그 질문을 한 걸 후회했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더 알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언니 생각을 했구나. 그럴 수 있지...


내 기억에는 없지만, 내가 태어나고 한동안은 많은 관심과 사랑이 나에게로 옮겨 온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 점이 언니한테 많이 미안했을 테고.


하지만 나는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누던 당시 마음이 많이 힘들던 시기를 겪고 있었고, 엄마의 그 대답은 다시 한번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엄마 잘못은 아니기에) 엄마한텐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의 그때 그 모든 감정들을 알고 있던 남편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결국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엄마를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내가 속상한 건 또 별개의 문제니까.


출처: unsplash.com


내 마음의 어둠이 지나가면서 이 또한 지나간 감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의 감정은 이제 그만 묻어두려고 한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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