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소리에 폰을 보니 링크드인에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S, 내 전 직장 보스였다.
1년 반전쯤 전 직장을 떠난 후 몇몇 동료와는 가끔 연락하며 지냈지만, S와는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일할 땐 꽤 두터운 관계라 믿었는데 그럼에도 이직 후까지 연락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간단한 안부인사 정도를 기대하며 열어 본 메시지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금 어떤 회사에서 Controller를 찾고 있는데 지원해보지 않겠냐며, 내가 관심 있다고 하면 그 회사에 직접 소개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온 이 메시지를 나는 읽고 또 읽었다.
현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이직을 고려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사실 S가 추천해 준 그 포지션은 내게 그다지 매력적인 일이 아니었으므로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정중하게 거절 답변을 보냈다. 내 생각을 해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내가 다닌 전 직장은 Big4 회계법인 중 하나인 아주 큰 회사였다. 회계사로서 Big4에서 일을 한다는 자부심, 게다가 이민자인 내가 그 대단한 사람들 무리 속에 끼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하나같이 똑똑하고 잘난 내 선후배, 동료들은 명문고 혹은 명문대를 나왔거나, 우수학생으로 졸업한 사람, 그도 아니면 동아리나 스포츠팀 리더 출신인 사람 등 다들 소위 '잘 나가던' 사람들이었다.
모두 다 ‘내가 슈퍼스타!’라고 외치는 곳 - 그곳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가득 모인 집단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한국에서는 알만한 대학을 나왔다고 하지만 여기선 아무도 몰라주는 곳이었고, 회계사의 길로 들어서기 전 대학원도 졸업했으나 회계와 딱히 연관된 전공이 아니어서 경력으로 내세우기도 애매했다.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니 말할 것도 없고, 내향적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걸 누구보다 어려워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들과 섞이기 위한 노력으로 처음 1,2년은 '척'을 많이 했다. 명랑한 척, 사교적인 척, 알아듣는 척, 기죽지 않은 척.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척'이 피곤하게 느껴졌고, 연차가 쌓임과 함께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데 대한 걱정이 줄기 시작했다.
1년 차 때는 웬만하면 참석하던 금요일 소셜 파티는 정말 가고 싶은 행사 외에는 참석하지 않게 됐다. 영어든, 회계 관련 지식이든 못 알아듣는 게 있으면 혼자 조용히 찾아봤었는데, 언젠가부턴가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냥 물어보게 됐다.
그런데 '기죽지 않은 척' 그거 하나는 포기를 못하겠더라.
나만 빼고 다 잘난 것 같은 사람들 속에 잘못 끼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나 자신이 하염없이 작아지는 것 같은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실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민자 출신
유일한 한국인
캐나다 명문대가 아닌 한국의 ㅇㅇ대학교 출신
동기들보다 훨씬 많은 나이
관련 코업/인턴쉽 경력 전무
라는 핸디캡을 갖고도 당당하게 합격한 게 나였다.
나는,
외향적이진 않았지만 모두에게 친절했고
앞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늘 조용히 동료들을 챙겼고
기발한 아이디어는 없었지만 꼼꼼함이 무기였고
경력이 없는 대신 그만큼 열심히 배웠고
속도는 느려도 누구보다 성실했다.
이 모든 게 나의 장점이 된다는 걸, 그리고 그런 나를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회사를 나올 때는 여러모로 상처도 있던 때라 내 보스가 떠나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자신이 없었다. 혹시 나에게 실망하진 않았을지, 나아가 내게 불편한 마음이 남진 않았을지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먼저 연락해 볼 용기는 없어 안부인사조차 전하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그랬던 내게 어느 날 오후 그에게 온 이 메시지 한 통은 지난 1년 반 동안 담아뒀던 이 마음의 짐을 마침내 내려놓게 하는 작은 선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선물 덕분에 올해는 조금 더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렇게 감사한 일이 하나 더 쌓인다.
사진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