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드림 hd books Mar 22. 2018

전라도 사람들의 놀라운 어휘 구사력4-짐샌과 짐샌떡

전라도 사람들의 놀라운 어휘 구사력4

-짐샌과 짐샌떡     


다른 지역에서처럼 내 고향에서도 아주머니들에게는 친정 마을 이름을 앞에 붙여서 ‘00댁’으로 호칭하였다. 다만 된소리가 되다 보니 동광댁, 고흥댁, 순천댁, 벌교댁을 동강떡, 공떡, 순천떡, 벌교떡처럼  ‘00떡’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남자들에게는 '샌'을 붙였는데 예의바른 이 고장에서는 선생님의 준말로 샌을 썼던 거 같다. 그래서인지 나이 어린 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도 스스럼없이 ‘샌’을 붙여 불렀다. 다만, 샌은 높은 존칭이라기보다 일반적인 남자 호칭을 조금 높임말인 듯하다. 학교 선생님처럼 특별히 존경을 표할 때는 줄임 없이 ‘선상님’이라고 깍듯이 존칭하였기 때문이다. 


여자들과는 달리 남자들에게는 성을 붙였다. 성이 이씨면 이샌(이 선생님 준말), 성이 김씨면 짐샌(김 선생님 준말_내 고향에서는 ㄱ 발음이 ㅈ으로 발음되기도 한다.)이다.     

그런데 여자 호칭은 남편 성을 앞세워 부르기도 하였는데, 어쩌면 이것은 시집가면 남편 성을 따르는 미국식과 유사한 면이 있다.

김 선생님 부인이면 '짐샌떡', 이 선생님 부인이면 '이샌떡' 이런 식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남자들 호칭에서도 여자 친정 고향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같은 성씨가 여럿이다 보니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그런 거 같은데, 고흥댁 남편 박 선생님은 '공박샌', 동광댁 남편 이선생님은 '동강이샌', 서울댁 남편 서 선생님은 '설서샌'이었다.      

장가 안 간 나이든 청년에게는 이름을 붙여서 호칭하였다. 철수 이샌, 길동이 짐샌, 이런 식이었다.     


나는 덕산 이샌이다. 전남 순천 별량면 덕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마을에서 태어난 우리는 모두 이름 앞에 덕산을 붙여 덕산짐샌, 덕산떡, 덕산장샌, 덕산이샌 등으로 불려야 한다.     


일본식 호칭인 '상'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내 고향 사람들의 줄이기식 발음 습관을 보면 '샌'은 선생님과 일치할 것이다. 

'샌'은 요즘 호칭인 '샘'과 같은 것이지 싶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데 쓰는 ‘슨상’이라는 표현은 전라도 사람들이 선생님을 슨상님 혹은 선상님으로 발음하는 데서 비롯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 사람들은 그를 특별히 존경하는 마음에서 ‘김대중 선생님’이라고 불렀었다.  

   

거친 욕도 잘하는 전라도 사람들이지만 이처럼 어휘 구사가 가히 실용적이고 예의바르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국어사전에 숨은 예쁜 낱말-물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