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과 문학에서 특별한 인연은 계속되고
인터넷 서점에서 한판암을 검색하면 그동안 출간한 18권의 수필집이 어느 수필가의 자취소리처럼 줄줄이 드러난다. 첫 수필집 [찬밥과 더운밥]이 2005년 11월 05일 출간된 이후, 이번 수필집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가 2023년 2월 2일 날을 받아 출간되었다. 2005년 끝 무렵에서 첫 수필집이 나왔으니 지난 19녀여 동안 매년 한 권의 수필집을 출간한 셈이다.
물론 18권의 책 가운데는 [절기와 습속 들춰보기], [반거충이의 말밭산책]처럼 순수 수필집이라기보다 에세이 형식으로 쓴 교양도서도 있고, [가고파의 고향 마산]처럼 경남 마산만을 소재로 하여 마산이 고향인 이들에게 자부심과 애틋한 정서를 느끼게 할 수필집도 있다. 일종의 테마수필집인 셈이다.
또한, 18권의 도서 가운데 [반거충이의 말밭산책]과 [8년의 숨가쁜 동행]은 일종의 우수도서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이 되었다. 지난 19년 동안 한판암 교수가 출간한 도서 가운데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수필집 4권이 있다. 손주 양육기를 수필로 엮은 [파랑새가 머문자국], [은발 할아버지의 손주 양육기], [초딩 손주와 우당탕탕], [8년의 숨가쁜 동행] 등이 그것이다. 손자를 생후 39일 되던 날부터 14년 동안 양육하면서, 손자에게 영원한 기록으로 남겨줄 글을 써오며 출간한 책이 무려 4권이나 된다.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아무 준비도 없이 갓 태어난 손주를 키우면서 겪은 애환과 지혜 등 손주 양육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묶은 것이다
18권의 도서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수필집 4권
이들 4권의 책은 어느 날 벼락 치듯이 할아버지 품으로 파고든 손자와 밀고 당기며 수놓은 씨줄과 날줄의 더덜없는 흔적이요, 편린이며 적바림이다. 또한, 순백한 영혼의 손자가 맑은 눈으로 세상을 깨우쳐 가는 날갯짓이다.
한판암 수필가는 손자의 유소년 뜨락을 가꾸고 채색하며 마음과 눈길이 머물던 순간들을 이들 책을 통해 생생하게 소묘하였다. 손자의 소소한 일상을 더덜이 없이 드러내는 민낯으로써 할아버지라는 거울을 통해 투영되는 손자의 진면목인 셈이다. 좀 더 성장해서는 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풋내기 손주와 서두르며 진동한동 세월의 징검돌을 정신없이 건넌 흔적이요, 할아버지와 손자가 동행하는 삶의 맑고 밝은 정신과 영혼의 생생한 자취소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 책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이 나부대는 손주와 덜컹거리면서 하루해를 여닫으며 살아가는 일상의 고백이며 적바림이지만. 무엇보다 손자 양육 에세이라는 점에서, 직접 손주를 양육하는 부모가 손자를 정서적으로 충만하게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에세이로 편안하게 읽으면서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을 고민하고 찾아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경남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수필가인 저자의 수필집이 나올 때마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출간된 열여덟 권의 도서는 필자(해드림출판사 이승훈)가 직접 만들었다. 첫 수필집인 [찬밥과 더운밥]과 [내가 사는 이유]는 필자가 편집장으로 근무하던 출판사에서 직접 맡아 작업하였고, 나머지 도서는 해드림출판사(수필in 포함)에서 출간한 것이다. 출판과 문학에서 한판암 수필가와 필자의 인연은 이처럼 아주 특별하게 이어져오는데, 어느덧 20여 년이 훌쩍 넘어 저자는 7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필자는 육십 중반으로 들어섰다.
삶을 간추렸던 흔적들이 사방에 널브러진 채
갈무리되던 것을 정리해 갈래짓고
산수의 새해를 맞고 싶어
이번 수필집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를 펴내며, 저자의 회한을 간추려 본다.
[삶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너그럽고 어질며 온후하고 덕스럽게’를 뜻하는 “관인후덕(寬仁厚德)”의 품성에 도저히 다다를 수 없으며 까마득하고 아득하다. 게다가 선현들이 일깨워 준 ‘강이 깊으면 물이 고요하다’라는 “강심수정(江深水靜)”의 경지는 언감생심으로 영원히 넘볼 수 없는 피안의 동경일 따름이다.
삶을 간추렸던 흔적들이 사방에 널브러진 채 갈무리되던 것을 정리해 갈래짓고 산수의 새해를 맞고 싶었다. 이 같은 소박한 바람을 위해 씨줄과 날줄로 엮어 줄 세우고 무더기 지어 이름 짓기로 했다. 지난 2021년 초부터 2022년 정월까지 써서 컴퓨터에 무질서하게 방치하였던 글 72개를 책으로 묶어내려 한다.
이 글집의 대문에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라는 문패를 달기로 했고, 모두 6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눈물 찔끔거리는 버릇’, ‘물방울이 돌을 뚫을까’, ‘누구를 얼마나 닮았을까’, ‘부당한 통행세 징수’, ‘들국화 예찬’, ‘부엉이 소품’ 등으로 명명했다.
이번에 펴내는 책이 내게는 소중할지라도 전문가나 독자의 드높은 기준에 견주면 빈 쭉정이가 하도 많아 화조재리(禍棗災梨)를 면키 어려울 게다. 비록 그럴지라도 숨김없는 삶의 증적이며 사고의 범주에서 건져냈던 진솔한 혼이 응축되었기에 또 다른 나의 단면이 틀림없다.
세월이 지날수록 주위에서 괄호 밖으로 내몰리는 심정이다. 사회적인 참여 기회나 주위의 지인들과 만남이 점점 줄어들고 역할이 축소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마뜩잖고 섭섭하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며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면서 부쩍 심하게 움츠러들었다. 이런 세월에 존재 이유를 찾으며 글을 쓰는 낙이라도 맘껏 향유하면서 내 얘기를 쉼 없이 조곤조곤 이어갈 참이다. 아름답고 보람된 노년의 희망가를 흥얼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