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오래 쓰면 시가 맑아지는 시인이 있다. 시가 영혼을 맑히는 구도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시를 오래 쓰면 시에서 동심이 흐르는 시인이 있다. 시의 연륜이 쌓일수록 세속의 때가 씻기기 때문이다.
시를 오래 쓰면 시가 따뜻해지는 시인이 있다. 가난한 사람의 겨울처럼 슬픈 날에도 시가 시인을 다독여주기 때문이다. 시를 오래 쓰면 시가 예뻐지는 시인이 있다. 여성의 섬세한 결이 세월이 흐를수록 시에서 완숙해지기 때문이다.
‘이즘도의 아침’, 정정근 시인의 시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순박했던 자신은 점점 없어지고 낯선 자신이 자주 오더니 언제부터였는지 아주 바뀌었다는 시인이다.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자신이 맘에 안 들어 남의 옷 남의 생각으로 산 탓으로 돌린다. 약은 체, 잘난 체, 체, 체, 체 하다 보니 정체성이 흔들려, 사람인 듯 악귀처럼, 식물인 듯 고사목처럼 숨 쉬는 돌멩이처럼 사는 날이 있다며 겸손해 한다.
‘내가 만든 나보다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내’가 훨씬 나았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단다. 몸은 어쩔 수 없어도 마음만이라도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시인은 이 시집에다 담았다.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과 시집을 발표한다는 것에 심한 갈등을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산고로 힘들어하던 산모가 '다시는 임신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도 아기가 방긋방긋 웃으며 재롱 피는 것을 보면 그 고통 다 잊고 또 아기를 갖는 것과 같은 시인 정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