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는 숲 소리가 불안정하게 흐르는 내 안의 기운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비가 내린다며 떠들어 쌓는 새들이, 서울 소음이 깊이 박힌 내게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줄여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
이중생활을 시도한 지 한 달쯤인데 아직은 적응 기간이다. 한마디로 두 집 살림을 한다. 뇌리속 이성과 가슴이, 시공을 초월한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공존하는 삶이다. 하지만, 오랜 연륜과 생존의 무게가 있으니 서울의 구심력이 시골집 풍경을 울릴 만큼 강하다. 서너 달쯤 지나면 이중생활이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91세 어머니를 더는 시골에서 홀로 지내게 할 수 없어서 두 집 살림을 하기로 하였다. 출간 업무가 대부분 컴퓨터로 이루어지니 외장하드 두어 개만 챙겨 시골로 내려오면 시골집에서 일해도 별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리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치 모든 일이 내가 서울에만 있어야 이루어질듯, 서울 사무실 자리를 비우면 금세 회사가 기울기라도 할 듯 불안해하며 선뜻 결정하지 못한 채 시골 어머니를 향해 까치발을 세우며 마음을 동동거렸다. 어머니 혼자 시내버스를 타고 병원을 다닐 만큼 건강이 우선하다지만, 서울의 나는, 91세라는 어머니의 나이가 늘 불안할 뿐이었다.
결국, 모험을 하는 심정으로 서울과 시골에서 절반씩 보내기로 한 것이다.
비바람이 90년 세월을 스치면 바위도 상할 터, 지난한 세월을 헤쳐온 어머니의 육신이야 오죽할까. 여기저기 통증을 달고 사신다.
시골의 내가, 어머니를 챙기는 일은 쥐코밥상이다. 아침식사를 건강식으로 간편히 차리는 일, 식사 후 설거지 하는 일, 저녁 후 어머니랑 도란도란 꽃차를 마시는 일 정도이다. 시골 생활의 발씨가 익으면 지금보다는 나을 성싶지만, 온종일 이어지던 어머니의 침묵을 짬짬이 해체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
그간 종종 시골에 내려왔을 때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자식이 아까워 물 한 방울 묻히게 하고 싶지 않다던 어머니가, 이제는 아들의 설거지를 으레 받아들인다. 끼니마다 설거지를 해보니, 우리나라 어머니와 아내의 손들은 우리 삶의 기초를 이루는 기둥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을 하다 바람 없는 창밖을 본다. 어쩌다 마당 가 울타리 나뭇잎들이 깜박 졸 듯이 흔들릴 뿐이다. 한낮인데도 모든 세상이 정지된 듯 고요한 시골이다. 가끔 자신의 밥그릇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을 내쫓는 앞집 멍멍이가 고요를 깨트릴 뿐이다. 오른쪽에는 전철과 KTX 등 온갖 열차가 쉼 없이 오가는 철길이, 왼쪽에는 8차선 도로가 있는 서울 사무실로 들려오던 그 소리들이 그리울 정도이다. 너무 고요해서인가. 문득 서울의 구심력이 해매를 끼얹어 잠시 심연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애옥살이에서 오는 해매이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마당을 거닐며 담배를 피운다. 시골 하늘에는 금연이라는 표지가 안 붙어 있다. 대신 앞집 닭들이 담배 좀 끊으라며 갑자기 울어쌓는다. 요즘 시골집 마당에는 큼직한 영산홍이 붉은 기세로 영혼을 사로잡는다. 시간을 멈출 듯한 신비의 결정체처럼, 수만 개 꽃을 단 우리 집 영산홍도 한 기세 하지만, 앞집 마당 작은 언덕을 차지한 영산홍도 환장하게 피었다. 어찌나 붉은 유혹이 강한지 한 움큼 따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 앞집 영산홍이 우리 영산홍보다 더 화려하고 예뻐 보인다. 비록 영산홍의 주인은 앞집일지라도, 주인 없는 꽃처럼 나는 아침마다 대문을 나서 앞집 영산홍의 유혹을 즐긴다.
어머니가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마당 가를 돌며 여기저기 흩어진 상추며 취나물, 민들레, 초피 이파리를 뜯어와 씻었다. 깊디깊은 지하수를 끌어 올린 시골집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거침이 없다. 시골집 물을 대할 때마다 늘 정체된 내 삶이 비끼곤 한다. 시골집 물맛이 뿌려진 푸성귀 한 양푼을 다 먹다시피 하였다. 어머니가 양념장을 맛있게 만드시니, 다음에는 콩나물밥이나 무밥을 해서 꼬막 사다가 꼬막 비빔밥도 푸지게 해서 먹고 싶기도 하다. 가끔 순천 시내를 나가면 맛집을 눈여겨 보아두곤 한다. 연로한 어른들은 무엇보다 먹는 즐거움이 크지 싶어서다.
오래전, 먼데 섬처럼 바라만 보았던 여인이 내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 하느님은 효자를 가장 사랑하신다고. 내가 효자이긴 하는 모양이다. 사위가 연둣빛으로 물들어가는 공간에서 숨을 마구마구 쉬자니, 하느님께서 내게 참으로 큰 은총을 주셨구나 한다.
삶의 노이즈가 줄어들고 조용한 공간에서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요 며칠 내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