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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Mar 06. 2018

출판 이야기1-떠날 수 없는 새

떠날 수 없는 새

-출판 이야기1

  

서울 도심의 가을 불빛들이 무덤덤하게 시야를 스치며 사라진다. 오랜 시간 고독하게 지켜보아도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하는 불빛들, 그럼에도 나는 사무실 발코니에서 멍하니 어둠 깊은 도심의 불빛을 내려다보곤 한다. 막연해 보이는 세상을 향한 나의 존재감을 꿈꾸기 때문이다.

도심 불빛들이 마치 내 것인 양 가슴 가득 들어오는 그날을 위해, 저 불빛들이 살아 숨 쉬며 나를 설레게 할 그날을 위해, 어둠 속 높은 허공에서 반짝이는 불빛 하나 되기 위해 어두컴컴한 발코니에서 도심의 생명 없는 침묵을 마주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다 오래 전 읽었던 *시 한 편을 떠올린다. 주남저수지에서 비상과 활강을 거듭하는 철새 무리를 바라보며 시인은 겨드랑이가 간지러웠다. 주남저수지를 떠난 철새들은 시인의 겨드랑이에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나는 고층 빌딩의 불빛들을 바라보면 여전히 겨드랑이가 가렵다. 떠날 수 없는 새….    


세상사 늘 갈증을 달고 사는 나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 이야기와 '나비효과'라는 말을 신념처럼 새겨두고 산다. 이 가운데 나비효과는 군잎 다 떼고 말하자면 북경에서 일렁이는 나비 날갯짓이 뉴욕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미약한 힘이지만 그 기운의 파장이 점차 퍼져 엄청난 힘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사에도 이 나비효과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고 또 내게는 꿈을 상징하기도 한다. 황폐한 산등성이에 오랜 세월 묵묵히 도토리를 심어 끝내 울울창창한 숲을 일구는 장 지오노 이야기나 로렌츠의 나비효과는 출판 사업을 하는 내게 언제나 희망으로 다가오는 기운 찬 말이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 아쉬운 개학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방학 과제 중에는 글짓기 숙제가 있었는데 나는 이모가 살던 섬, 나로도 다녀온 이야기를 써냈다. 

당시 우리 담임선생님은 스물한 살, 갓 부임한 새내기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방과 후 나를 남으라 하시더니 여행기 퇴고를 도와주었다.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한참 수정을 하고 있을 때 교장 선생님이 빈 교실 순시를 하였다. 담임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이 혹 눈치 채실까 하여 얼른 딴청을 하였지 싶다. 하고 많은 나의 세상사 가운데 왜 그런 소소한 기억이 지천명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 생생히 남아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결국 난 글짓기 상을 받게 되었고 이후 글 짓는 데 늘 흥미를 두었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내가 쓴 시를 선정하여 학습 게시판에 붙여주시곤 할 만큼 글의 흥미는 초등학교 내내 이어졌다.     

 

이십 대와 삼십 대 깊은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우연히 수필로 등단을 하게 된 나는, 또 우연히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다 2007년 해드림출판사를 창업하여 이제 숙명처럼 매일 원고와 출판과 더불어 긴장하며, 호흡하며 때로는 즐기며 살아간다. 이 인연의 시작은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인 셈이다.

그 선생님을 이번 달 말경 뵙기로 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을 떠난 이후 처음 뵙는 것이다.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글짓기 하나가 지금의 해드림출판사가 되었으니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어느 길목쯤 와 있는 것일까…. 지극히 어린 시절 선생님 한 분과의 겨드랑이 날갯짓 같은 파랑을 새삼 떠올려 보는 요즘이다.     

선생님이야 까마득히 잊었겠지만 초등학교를 떠올리면 맨 먼저 떠오르는 그분이다. 인터넷 생활이 일상이 된 이후 나는 종종 선생님 이름을 검색해 보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뜻밖의 선생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의 출판과 문학 인생의 시원(始原)이신 선생님을 조만간 만나게 된 것이 그윽하기만 하다.

            

*삼월의 주남池(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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