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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Apr 07. 2019

반려동물과 사람4 말티즈가 나이 들어갈 때

혼자 지내게 되면서 큰 아쉬움 중 하나는 산책할 때 옆을 지키던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늘 산책길에 동행하던 남편이 해외에 나가고 그 자리를 대신하던 아들까지 학교로 가버리고 난 뒤 혼자 나가는 것이 싫어서 한동안 산책을 하지 않았다. 가끔 새벽에 크리스를 앞세워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나 일과가 끝나고 찬바람을 느끼고 싶어 나서는 일은 멈출 수 없어서 아파트 주변을 걸어서 돌아오는 일은 여전히 이어졌지만 확실히 횟수가 준 것 만은 틀림없다. 그러다가 다시 규칙적으로 밤 산책을 시작하게 된 것은 크리스 때문이다.    

크리스는 만 16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아 온 말티즈이다. 태어나서 한 달도 안 되어서 겨우 걸음마를 떼던 녀석이 우리 집에 왔으니 가족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새하얀 털과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얼마나 예뻤던지 녀석을 처음 보자마자 우리 셋은 만장일치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갓난아기 같던 녀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스러운 막내로 자리매김을 했다. 가족 중 누구라도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며 온 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알아서 대소변을 가리고 개를 키우는 집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만행(가구나 집을 훼손시키거나 의류를 못 쓰게 만드는)’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들이 운동을 나갈 때나 가족이 산책을 갈 때, 여행을 갈 때도 꼭 함께 따라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미가 되어 새끼를 둘이나 데리고 서울나들이까지 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사람들의 들고남을 정확히 알아맞히던 녀석에게 이상이 온 건 지난 해 여름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반겨주던 크리스였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조용했다. 문이 닫혀있었으니 어디 나갔을 리는 없을 테고, 덜컥 걱정이 되어 크리스를 찾으니 제 집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가느다랗게 코를 골면서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자는 크리스를 쓰다듬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다니던 병원에서는 노화가 진행이 되어 시력도 감퇴 하고 심장도 안 좋다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막상 인기척도 못 느끼고 잠에 빠져있는 크리스를 보니 아무생각도 안 났다. 그냥 안쓰럽고 슬펐다. 이후로 녀석의 감각은 점점 무뎌졌다. 왼쪽 눈에도 백내장이 진행되고 있었고 하루에 한 번씩 먹던 심장약도 두 번으로 횟수를 늘렸다. 나이가 많아 수술도 어렵다는 말에 시야가 흐려지는 걸 알면서도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앞이 잘 안 보이고 청력도 떨어지니 집에 있는 동안 녀석은 거의 잠만 잤다. 내가 집에 있어도 자주 놀아주지 못 하니 자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그나마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뿐인데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으니 녀석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내려오는 일 정도는 쉽게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것도 힘들어했다. 더는 지체하면 안 되겠다 싶어 쉬고 있었던 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세 번은 반드시 크리스와 산책을 하기로 다짐을 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녀석과 산책을 나서는 일은 좀 더 조심스럽다. 겨울 스웨터를 입히고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게 계단을 피해서 시간을 조절하면서 천천히 크리스의 동선을 따라다니다가 돌아온다. 산책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는 크리스와 걸으며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다보면 몸은 힘들어도 귀찮았던 마음도, 하루의 피로도 싹 날아가 버린다. 크리스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조금씩 약해지는 크리스에게 자주 사랑한다 말을 하고 더 많이 안아주면서 많은 순간 부모님을 생각한다. 지난봄에 허리 수술을 받으신 친정엄마는 여전히 걷기를 힘들어 하신다. 수술만 받으면 가뿐하게 다니실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자식들의 바람이었을 뿐 여든에 가까운 엄마의 다리는 좀처럼 예전같이 건강해지지 않는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 더 자주 여행도 다니고 더 신경 써 드렸을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 두었던 일들이 문득 후회가 되고 이젠 아무리 후회를 해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엄마랑 맛집도 다니고 영화도 보고 온천도 하고 밤새 마주보고 누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련만. 무엇을 하느라 그 많은 순간 엄마를 잊고 지냈는지. 

엄마가 병원에 계시는 한 달여 동안 매일 포항과 부산을 오가며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이미 모친의 기력은 많이 떨어져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퇴원 후 여행을 가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가벼운 곳으로 산책을 가시는 것도 힘들어하신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엄마와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오는 일이다. 일주일의 일정이 빠듯하게 잡혀있는 딸의 생활을 아시는 부모님께서는 일도 없는데 일부러 찾아와 수다를 떨고 가는 나를 만류하셨다. 진작 했어야 될 일을 너무 늦게 하고 있는 탓이다. 부모님을 찾아뵙는 당연한 일에도 마음 쓰시는 것은.      

일과를 마치면 대개 열시가 넘는다. 옷도 갈아입기 전에 크리스와 산책을 나선다. 크리스도 나도 옷을 단단히 껴입고 천천히 걸어서 겨울밤을 온몸으로 느낀다. 춥고 피곤해도 녀석과 함께 하는 산책을 쉴 수가 없다. 녀석에게 받았던 무한한 신뢰와 애정, 따뜻함을 함께할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집을 비우기가 일쑤인 주인을 한없이 기다려만 온 녀석에게, 그러고도 한결같은 사랑을 주고 있는 녀석에게 이제 뭐라도 해 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녀석의 감각은 눈에 띄게 둔해지고 심장이 더 나 빠지고 있다는 징후가 잦다. 눈앞에 서 있는 내 다리에 부딪혀서야 나를 발견해 내는 녀석을 눈물 그렁한 채 꼭 안 아주는 일. 매일의 산책을 거르지 않는 일. 그리고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일.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다.(고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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