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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Mar 27. 2018

전라도 사람들의 놀라운 어휘 구사력 5-신간 편한 소리


“덕산떡 큰아들이 입원 했담서.”

“잉, 먼 암이라드마.”

“참말로 어째야 쓰까.”

“긍께 말이여. 다 늙어 신간 편할 날이 없으니 짠해 죽겄네.”     


살다보면 누구든 신간 편할 날이 얼마나 있으랴.

‘신간 편할 날’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은 작고하신 김윤성 시인이 아닐까 싶다.


오래 전 모 문예지에서 편집장으로 할 때 일산에 사시던 선생님을 취재를 하였는데, 이를 인연으로 당시 내가 맡아 발간한 선생님 시집의 제목이 ‘아무 일 없는 하루’이다.

‘아무 일 없는 하루’, 이처럼 신간 편할 날이 있을까. 음미할수록 참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운 말이다.     


전라도에서도 ‘신간 편하다’라는 말을 잘 쓴다. 

만일 신간이 아닌 ‘심간 편하다’고 하면 어떤 의미가 될까. 심간(心肝)은 명사로, 1)심장과 간장을 아울러 이르는 말(예, 그는 매일 과음을 하여 심간에 다 병이 생겼다.) 혹은 2)깊은 마음속(예, 사업하다 보면 심간 편할 날이 없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심간 편하다’는 몸이 편하거나 마음이 편할 때 아울러 쓸 수 있다. 

'심간'과 '편하다'는 별개의 낱말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전라도에서 표현하는 ‘신간 편하다’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신간(身幹)이 몸통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간 편하다는 몸 또는 마음이, 신간 편하다는 마음은 좀 불편해도 몸이 편하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이제 옥답을 팔아불고 속이 쓰려서 어치 살란가.”

“머, 어처겄소. 속이야 쓰리지마는 인자 농사 안 지어도 된께 신간이야 안 편하겄소.”  

    

3월이 되어 날씨가 포근해지니 주변에서는 심간 편한 소리만 해쌓는다.

친구가 오래 전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

 “회사 오너는 구멍 난 배의 물을 퍼내가며 항구까지 끌고 가야 하는 선장과 같다.” 

적어도 내게는 맞는 말이다.

그런 거 보면 봉급쟁이가 심간 편하다.

오너는 주말에도 일을 하느라 정신없지만, 직원들이야 심간 편하게 쉴 수 있으니 말이다.  

나도 곧 심간 편한 소리만 해 쌓아며 살아갈 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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