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순천…순천에서 서울로 향할 때면

by 해드림 hd books

풀벌레의 나라에서 새벽녘 눈을 떴다. 이즈음 시골은 밤낮으로 섬세한 풀벌레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올여름의 현기증을 일으키던 폭염과 지나치게 쏟아지던 폭우의 나날, 나무들을 허리가 부러질 듯, 뿌리가 뽑힐 듯 휘우청거리게 하던 폭풍을 저 여린 풀벌레들이 어찌 견뎌내고 가을을 목놓아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한여름 개구리나 매미는 한 번씩 쉬었다가 울기도 하련만, 어떻게 생긴 풀벌레가 어떤 울음을 토하는지, 또 어느 풀숲에서 울어대는지 눈으로 볼 수 없는 풀벌레들은, 울다가 울다가 기력이 소진하여 죽을 듯이 온종일 가을을 울려댄다. 풀벌레들은 사실 여름 무렵부터 소리내기 시작하였다. 여름과 가을 내내 울다가 풀벌레들의 소리가 그칠 무렵이면 겨울이 찾아온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풀벌레들이다.


다섯 시가 되자 시골 새벽은 수탉들이 차지한다. 한 시간쯤 수탉들이 새들을 깨우면 시골 이른 아침은 자연의 소리들로 가득 찬다. 멀리 마을 앞을 질주하는 차량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기는 하지만 고향 마을 산 아래 우리 집은 언제나 숲속의 아침을 연상케 한다. 마당 잔디밭을 서성이다 보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시골살이의 행복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어머니를 홀로 둔 채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다. 시골에서 좀 더 머물다 올라가도 되지만, 나와 직접 출간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저자와 미국에서 귀국한 저자와 출간 미팅도 잡혀 있어서 귀경을 서두른 것이다. 올가을은 세 사람의 미국 교포 저자와 출간 미팅이 잡혀 있다. 한 분과는 절두산 성지 피정도 함께하기로 하였다. 외국 동포 저자들은 책을 출간하면 선적 등을 통해 그 나라로 보내야 해서 국내 저자 출간작업보다 어렵긴 하다. 더구나 오랫동안 그 나라 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국내 출판 시장 상황이나 인간관계가 자신들이 국내 거주할 때와는 엄청난 변화가 있어서, 출간 이야기 나누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특히 출간비용 등 이해관계가 발행하는 부분이라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먼 이국에서 들어와 책을 출간하고 싶어 하는데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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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다 서울로 올라갈 때면, 그동안 시골에서 어머니에게 얼마나 잘해드렸는지 성찰하게 된다. 어머니께 잘해드리든, 못 해드리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 바로 곁에서 살필 수가 있으니 염려가 덜하지만, 귀경하기 위해 어머니를 떠나려는 순간부터 염려가 앞선다. 좀 더 섬세한 섬김을 하지 못하면서도 염려만 앞세우는 꼴이다. 하지만 아무리 못 해드린다 해도 한 번씩 어머니를 떠나 있게 되면, 다음번 내려와서는 좀 더 잘 챙겨드려야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더욱 애틋해지는 이점도 있다.


순천 사무실을 마련한 후부터는 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두 사람 먹을 국거리나 찬거리를 미리 챙겨 두시곤 한다. 온종일 집에서 일할 때와는 달리,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부엌에 계시는 어머니를 보게 된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어머니가 미리 국이나 반찬을 마련해 두어, 나는 밥상만 차리고 설거지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일하러 나가는 자식이 안쓰러워 노구를 이끌고 찬거리를 준비하시는 듯하다. 당신 곁에서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드리지 못하는 게 죄스럽긴 해도, 뭔가를 위해 어머니가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도 내게는 위안이 된다. 또한, 어머니가 국이나 반찬을 하시면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맛깔스러울 뿐만 아니라, 91세 어머니가 해주시는 반찬을 64세 아들이 받아먹을 수 있는 행복도 크다. 어머니를 여윈 주변 지인들이 어머니가 계시는 게 큰 복이라고들 한다. 나도 부정하지 않는다.


지난 몇 달 좌골신경통으로 몹시 고생하셨지만, 어머니와 한집에서 생활하며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요즘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 모르겠다.

요즘은 내가 좌골신경통을 앓는다. 설거지를 하면 잠시 주저앉았다 일어설 정도이다. 걸을 때도 통증이 심해 한의원에서 침도 맞아보고, 통증의학과에서 주사와 처방한 약도 먹어 봤지만 잠시 그뿐이다.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치료를 제대로 해야지 싶다.


직원들과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반찬들이 참 정갈하다.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 밥상을 이만큼 정갈하게 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다. 서울로 올라오면 어찌 되었든 나는 끼니마다 식당에서 제대로 돈 식사를 하는데, 어머니는 혼자 또 대충 때우시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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