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여대 알브레히트 후베 교수와 S시인이 출간 상담 차 사무실을 찾아왔다. 교수님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여직원들이 먼저 알아봤다. TV에서나 언론 인터뷰에서 자주 뵌 터라 그럴 만도 하였다.
S 시인이 시집을 출간할 예정인데 후베 교수가 독일어 번역을 맡았다. 한독역 시집인 셈이다. 그런데 출간 이야기를 꺼내기 전 교수님이 대뜸 해드림출판사에서 해드림 김치를 만드느냐 물었다. 해드림 김치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단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S 시인이 해드림출판사로 가자 하니, 해드림 김치를 우리가 만드는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한국 이름이 ‘허배(許培)’인 후베 교수는47년째 한글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독일인 교수로 유명하다. 뮌헨대학에서 한국학을 공부할 무렵 유학생이었던 김광규 시인을 만나 한글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허배’는 김광규 시인이 지어준 것이다. 김 시인 부부는 후베 교수를 초대해 한국 음식을 차려주곤 하였다. 김치나 된장찌개 등을 그때 먹어봤는데 입맛에 딱 맞더란다.
또한 본대학 교수로 26년 동안 있으면서 한국어 제자 250명이나 길러냈으니 후베 교수가 세운 한글 업적은 괄목할 만한 것이요, 존경받을 만하다.
세상은 참 좁았다.
독일에 사는 지인의 시아버지를 후베 교수는 잘 알았다. 지인은 후베 교수가 아끼는 제자와 친한 사이였다. 더구나 지인과 후베 교수 사모님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성만 다를 뿐 이름도 같았다.
한글학자답게 교수님은 ‘해드림’이라는 이름이 참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 해드림출판사의 ‘해드림’ 의미를 설명해드렸다.
“사무실에서 출간 상담 하다보면, 저자들에게 ‘해드림’이라는 출판사 이름이 친근하고 정겹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2007년 6월 1일 해드림출판사를 창업할 당시에는 ‘해드림’이라는 상호가 별로 없었다. 만 12년이 지난 지금은 200개가 넘는 ‘해드림’이 검색창에서 노출된다. ‘해드림’ 상호나 회사 이름을 가진 주체들이 카페라도 하나 만들었으면 싶을 정도이다.
해드림출판사의 ‘해드림’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해꿈(SUN DREAM)이다. 해꿈은 단순히 베스트셀러를 상징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침 햇살 같은 삶의 기운을 세상 구석구석 비추는 꿈이기도 하다. 하늘의 꿈이다.
둘째는 해들임을 풀어쓴 것이다. 해를 안으로 들인다는 뜻이다.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다. 출판사든 책이든 저자든 빛이 들어와 환하게 빛나는 소망이다. 저자와 독자와 출판사를 축복하는 그분의 빛이 안으로 충만하기를 소망하는 뜻도 있다. 따라서 신앙적으로는 성령을 뜻하기도 한다.
셋째는 MAKE이다. 책을 만든다는 장인 정신, 즉 예술 정신을 담았다. 멋진 책이 출간되었을 때는 판매량과 관계없이 행복하기도 하다.
출판사를 창업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나는 원로 시인인 이상범 선생님을 찾아갔다. 사모님이 작명가여서 사모님께 출판사 이름을 부탁하러 갔었는데 이상범 선생님이 불쑥 ‘해드림’이라는 이름을 내놓아 나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고백하자면, 선생님이 ‘해드림’ 이름을 내밀 때는 구체적 뜻을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채 세 번째 의미만 두었을 뿐이다. 이름을 지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해드림’의미는 묵상을 통해 부여하게 되었다.
주변 지인들은 출판사 이름에서 신앙적 색채를 내세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신앙은 긍정의 힘이다. ‘해드림’에 신앙적 의미가 있다고 하여, 또 내가 신앙인이라고 하여 ‘출간’ 자체가 변하는 것은 없다. 신앙이나 정치적 이념에 따라 출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로고는 둥그런 해와 햇빛 일곱 개를 그리고 아래는 땅을 의미하는 이미지다. 가운데 해는 성령의 하느님을 뜻하고 햇빛 일곱 개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일곱 개의 은사인 ‘성령7은’을 뜻한다. 성령7은은 ‘슬기(지혜), 통달(깨달음, 이해), 의견, 지식, 용기(굳셈), 효경, 경외심’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곳 인쇄출판전용 건물인 센터플러스 빌딩 천사호(1004호)로 이사한 것도 다 의미가 있을 거라 믿는다. 출판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해꿈(SUN DREAM)’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
후베 교수님이 사무실을 떠나고서야 아차 싶었다. 내가 쓴 [국어사전 속에 숨은 예쁜 낱말]을 한 권 사인해서 드릴 걸 그만 깜박한 것이다. 하지만 또 뵙기로 하였으니 그때 드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