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부터 당신을 보며 자랐어요. 마을 앞 개펄 바다로 나가면 장구섬 너머로 당신은 길게 드리워져 있죠. 어린 시절 우린, 썰물 때가 되면 마을 앞 개펄 바다에서 망둥어나 짱뚱어, 칠게며 쏙이며 아기반투명조개 같은 갯것을 잡기도 하며 개펄에서 거의 뒹굴고 살았습니다. 강 고랑은 우리 놀이터였어요.
저는 순천시 별량 덕산 살아요. 오랜 세월 ‘장도’라는 당신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사실 당신의 실체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마을 앞 개펄 바다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여러 섬 가운데, 어느 한 곳이려니 했죠. 우리 마을 앞에서 당신은, 하나의 산등성을 지닌 섬이 아니라 마치 여러 개 섬처럼 보여요. 그러니 저 섬들 가운데 장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나중에야 당신은 크고 작은 섬들이 길게 이어진 모습이란 걸 알았어요.
저는 일찍 고향을 떠났습니다. 어머니조차도 30여 년 서울에서 생활하여, 고향 시골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시골집에는 잠시 다른 이들이 들어와 살기도 하였는데, 20여 년 전 어머니가 서울 생활을 끝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저도 자주 내려오게 되었답니다.
서울에서 고향 마을로 내려오면, 나는 개펄 바다가 펼쳐진 갯둑 길을 산책합니다. 고향 마을은 집들이 모여 있는 주거지를 벗어나면 널따란 들판이 있고, 그 들판 너머가 개펄 바다입니다. 마을을 빠져나와 들판을 가로질러 개펄 바다를 만나야, 나는 고향의 정서를 깊게 느끼곤 합니다. 들판 중간쯤 이르면 당신이 성큼 앞으로 다가온 듯한 모습이죠. 갯둑 길을 걸으면 이상할 만큼 당신에게 마음을 빼앗겨요.
특히 밤이면 당신이 멀리서 비춰주는 불빛들이 끝없이 상념을 일으키게 해요. 어둠 속에서 고요히 웅크린 당신은 항상 신비로운 존재였습니다. 도시의 삶이 고단하고 외로울 때, 당신의 불빛은 알 수 없는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당신은, 당신의 뒷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왜냐하면 마을에서 새어 나오는 여러 불빛이 아니라, 불빛 몇 개가 드문드문 보이거든요. 어둠 속에서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향해 걸어둔 불빛 같기도 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건너갈 수 없는 섬이어서, 당신의 불빛은 여러 상상을 자극하기도 하지요. 밀물이 바다를 가득 채울 때든, 당신이 있는 곳까지 개펄이 드러나는 썰물 때든 우리는 당신에게 직접 다가갈 길이 없습니다. 그런 탓인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먼 데서 바라보기만 하듯 애타는 눈빛이 나오기도 합니다. 당신의 한적한 곳에서 좀 더 밝게 빛나는 불빛을 보면, 자신을 그리워하며 우리 마을 앞 갯둑 길을 서성거리는 남자를 위해 한 여인이 밤마다 밝혀두는 불빛 같기도 해요.
나는 작년 봄부터 홀로 살아가는 노모를 위해 한 달이면 절반은 고향에 내려와 있습니다. 그리하여 부쩍 당신을 자주 바라보게 됩니다. 이른 아침 산책을 나가거나 저녁 만조 수위가 되면 바닷가로 나가지요. 만조 수위 때 당신이 보내는 불빛은 가슴 시리도록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합니다. 썰물 때 바라보는 당신의 불빛보다, 달빛 윤슬이 일렁거릴 때 바라보는 당신의 불빛은 애틋한 전설처럼 다가와요. 보름 만조 때 바라보는 불빛과 그믐 만조 때 바라보는 당신의 불빛은 느낌이 다른데, 아마 어둠의 농도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계절마다 다가오는 느낌도 다르고, 설물 때 바라보는 당신의 불빛은 숨 막히도록 쓸쓸하기도 합니다.
시골로 내려와 당신을 자주 보게 되면서, 당신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몇 달 전,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당신을 찾아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당신께 가는 길을 알아봤어요. 벌교에서 버스를 타고 상진항으로 가면 당신께 가는 배가 있다고 하더군요. 시간상 당신께 들어갈 수는 없더라도 상진항을 찾아가면 당신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결국 상진항이 있는 산등성 끄트머리로 가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지요. 우리 마을 앞 바닷가에서는 늘 당신의 한 면만 보다가 당신의 구체적 모습을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당신에게 달린 해도와 가지도도 정확하게 알게 되었지요. 그제야 오랜 세월 궁금증을 안고 살았던 당신에게 해방된 기분이었어요. 우리 마을 앞에서 바라보이던 모든 섬이 당신이었습니다. 상진항에서는 물때 따라 하루 두 번만 당신께 갈 수가 있더군요. 더구나 한 달이면 배가 운행 안 하는 날도 여러 날 있더라고요.
상진항을 다녀온 이후로는, 마을 앞에서 바라보는 당신이 너무나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당신입니다. 당신이 보내오는 불빛도 더욱 정이 깊게 들어버린 거 같아요. 당신 앞에 놓인 가지도를 바라보면 이상범 시인의 ‘섬’이라는 시가 떠오른답니다.
섬
세상 끝이 떠오를 때 먼데 섬을 생각했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거친 날에도
초록 섬 다박솔의 꿈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절망의 물결 저쪽 아스라이 뜨는 참별
돌아보면 섬은 거기 숨 가쁘게 다가왔고
목 놓아 울 수 없는 섬은 섬인 줄도 몰랐다.
참 애절한 시죠. 생의 절박한 끄트머리에서도 자신이 투영된 섬을 바라보며 스스로 위로하고 다시 꿈꾸는 삶의 자세가 경이롭기만 합니다. 나 역시도 갯둑 길에서 당신을 바라보면 온갖 시름이 잊히기도 한답니다.
얼마 전 화포해변에서 당신을 만났어요. 그곳에서 바라보는 당신은 우리 마을 앞에서 바라보는 당신과 아주 달랐습니다. 화포해변에서는 훨씬 가깝기도 하거니와 섬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이어서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답니다. 한참 이리저리 가늠하고서야 당신임을 확신하였고, 또 다른 반가움이 밀려들었어요.
머잖아 당신한테 꼭 한 번 가고 싶습니다. 당신 품에서 하룻밤 묵으며, 당신의 이곳저곳을 홀로 다녀보려고요. 당신의 냄새에도 흠뻑 취해보고 싶습니다. 밤마다 내게 보내오는 불빛이 어떤 불빛인지 찾아보고 싶고, 그 불빛에다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를 붙여주고 싶어요. 또 당신의 한 사람쯤, 친구로 두었으면 싶기도 해요.
기다려주세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