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팝나무 꽃이 한창이다. 가로수로 서 있는 신도림역 앞에도 하얗게 발광을 한다. 아카시아처럼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피는 꽃이다. 개나리, 목련, 벚꽃, 진달래, 철쭉이 핀 다음 차례로 나타난다. 맨 나중에 피는 꽃은 밤나무 꽃이다.
한때 이팝과 조팝 이름이 헷갈렸다. 조팝나무는 울타리처럼 자라듯 작지만 이팝나무는 가로수로 심을 만큼 크다. 그래서 가나다 순인 ㅇ, ㅈ으로 구분하니 헷갈리지 않았다. ㅇ이 ㅈ보다 앞서거나 큰 것으로 구분한 것이다. 꽃이야 조팝나무 꽃이 먼저 핀다.
이팝과 조팝 이외 또 하나의 팝이 있다. 정원수로도 심는 공조팝나무가 그것이다. 이팝, 조팝, 공조팝 3대 팝인 셈이다. 모두 하얀 꽃이다. 그런데 왜 '팝'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혹시 밥이었는데 팝으로 변한 거 아닐까. 모두 하얀 쌀밥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이팝나무는 쌀나무라고도 한다.
소위 보릿고개라는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시기적으로 농사 생산성이 없는 5, 6월이면 보릿고개가 찾아와 굶기를 반복하는 집이 허다하였다. 이 시기를 미끼로 좀 있이 사는 사람들은 없이 사는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도 하였다. 이때 쌀 한 됫박 빌려주면서 모내기나 가을 무렵 몇날 며칠을 부려먹는 것이다. 지금이야 대부분 기계 농사지만 당시는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해야 하는 막노동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무논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모심기를 하는 놉들에게 주인은 막걸리를 퍼 먹였다. 5월은 속 쓰린 계절이다.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킬 듯한 이팝나무를 보니 어머니의 삭신이 아프다.
보릿고개가 되면 아이들 허기를 달래주던 것이 무나 배추의 꽃줄기인 장다리였다. 장다리 줄기는 보릿고개의 상징이다. 참 아프고 슬픈 추억을 지닌 장다리다.
시절이 이러하였으니 배고픈 이들에게는 하얗게 핀 이팝나무 꽃은 쌀밥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보다 좀 일찍 피는 조팝꽃을 보며 허기를 느끼다가 이팝나무에서 허기가 절정을 이루어 얼굴들이 허옇게 뜬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저녁을 굶은 채 잠이 들었다가 아침 숟가락을 들면 손이 덜덜 떨렸다.
이즘 신도림역을 지날 때마다 흐드러진 이팝나무 꽃을 보면, 하얀 쌀밥을 어머니가 주걱으로 뺨을 쳐가며 고봉으로 담던 어느 해 가을이 떠오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