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형 인간과 커피형 인간, 녹차형 인간이 오래산다. 녹차는 '동안 피부'를 만들어 준다. 녹차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안이다. 그것은 찻잎에서 우러난 개나리꽃빛이나 푸른 기운이 서린 노란 색조가 얼굴 피부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다음 시들은 이상범 녹차 전문 디카시집 [녹차를 들며] 가운데 몇 편이다.
물소리-녹차를 마시며
그림 • 신흥균 화백의 다완 물소리 베고 누우면
별자리도 자리를 튼다
적막의 끝을 잡고
한 생각 종지로 밝히면
구천동九千洞 여문 물소리가
산을 끌고 내려온다.
풀빛 다관
사진 • 고무나무 새순, 녹색 다관
풀빛 다관 우린 녹차
새눈 뜨듯 신통할까
가끔은 차 한 잔 들며
생각 없이 앉고 싶다
창밖엔 쏟아지는 햇살
흔들리는 나뭇잎
녹차 잔에 녹아든 선운산
사진 • 선운사 찻집 창사진 • 선운사 찻집 창
창창한 녹색의 숲
계곡물엔 산천어 떼
찻집 창은 그늘의 고요
흡수해 맑은 기운
찻잔에 녹아든 선운산
풍경 소리 듣고 있다.
맹물이 끓는 찻집 -보이차를 들며
작은 카페 눈이 오면 주전자엔
백비탕白沸湯※의 작은 카페
변방의 기를 당겨
깃을 단 시의 편린들
잔 눈발 창가를 돌면
설악雪岳이 와 앉는다.
※백비탕白沸湯 • 맹물을 끓임
앳질※ - 수종사에서
사진• 고려쩍 앳질의 찻잔 팔당호 발아래 펼치고
작설차를 들다보면
차 빛깔이 번져 와서
풀물 드는 독경소리....
금 따라 찻물 배인 찻잔
실눈 뜨는 마음자리.
※앳질: 자기瓷器에 가늘게 금이간 것을
경상도에선 앳질 이라고 함.
산수유 꽃 차창茶窓가에
녹차에 서리는 김
내가 나를 위로 한다
남과 나 아프게 한 아픔
상처 위에 지는 꽃잎
남몰래 참회하는 아픔
내가 나를 용서한다.
초승달빛차※ - 칠불사 가는 길에
그림 • 먹물로 친 저자의 소심 난.
지리산을 풀어 마시니
물소리가 깨어났다
한 모금 다시 마시니
하늘빛 더욱 맑고
초록 물, 입에 물고서
산을 내려 놓는다.
※초승달빛차: 우전차雨前茶의 다른 이름.
녹차만 소재로(69편의 작품에서 커피를 소재로 한 시가 예닐곱 편 있다.) 한 이상범 디카시집 '녹차를 들며'이다. 녹차를 즐기려면 먼저 시집을 통해 그 멋을 느껴보자.
녹차와 커피에는 어떤 정조의 차이가 있을까.
커피는 향기와 맛으로 마신다. 녹자는 색조와 향기와 맛과 소리로 마신다.
커피는 활기찬 도시이다. 녹차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시골이다.
커피는 뜨겁거나 차다. 녹차는 중용이다.
커피는 쓰거나 달다. 녹차는 떠름하면서 감미롭다.
커피는 구운 내, 녹차는 풋내가 있다.
커피는 마신다. 녹차는 음미한다.
커피는 마시는 소리가 있다. 녹차는 넘기는 소리가 있다.
커피는 기쁘고 즐겁다. 녹차는 고요하고 온유하다.
커피는 빠르다. 녹차는 느긋하다.
커피 맛에는 색조가 없다. 녹차는 색조를 즐긴다.
커피에는 따르는 소리가 없다. 녹차는 따르는 소리를 즐긴다.
커피는 까칠한 맛을 남긴다. 녹차는 개운한 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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