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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Nov 03. 2019

피부의 불로초 녹차, 녹차를 즐기려면 이 멋을 먼저

색·향·미·청으로 마시는 녹차, 나는 색으로 마신다

색·향·미·청으로 마시는 녹차, 나는 색으로 마신다

홍안 또는 동안이 되게 하는 녹차


녹차를 즐겨 마시는 데는 차인 혹은 다도인의 정서적 취향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녹차는 색·향·미·청, 즉 색조, 향기, 맛, 소리로 마신다. 


먼저 다관에서 우린 녹차를 따를 때 소리를 만난다. 이른 봄 숲속 자그마한 개울에서 얼음이 녹으며 떨어지는 듯한 소리지만, 물이 아닌 차를 따르는 소리를 마신다. 다기 손잡이를 잡아 또르륵, 또르륵, 또르륵 세 번 나누어 찻잔을 채우면서 천천히 소리를 마시는 것이다.

청기(靑氣) 띤 노란 빛깔보다, 숫눈 같은 찻잔에서 드러낸 개나리꽃빛의 녹차 색조를 보면, 나는 헤시시한 마음의 홍안이 된다. 티 하나 없는 백자에서 순도 백으로 피어난 그 색조를 마시는 것이다. 색조를 색조답게, 산뜻하고 밝은 노란빛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백자 찻잔을 그래서 나는 고집한다.


향과 맛은 녹차의 본질이다. 본질에는 군잎이 없다.

녹차 향기는 내 능력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나는 그저 영혼을 맑히는 향기로 해석할 뿐이다. 찻잔을 들었을 때 찻잎이 풀어낸 아득한 향기를 마시는 것이다.

녹차를 마시면 쌉쌀한 맛은 색을 따라 넘어가고 달착지근한 맛이 오래도록 머문다. 소나기가 한바탕 씻긴 후 햇살이 점령한 세상이 입안에서 펼쳐진다. 하도 뒤끝이 개운해 사랑하는 연인과 키스를 나누고 싶을 정도이다. 


찻잎에는 4월의 풋 봄이 머물러 있다. 여름이 마시는 봄이요, 가을이 마시는 봄이요, 겨울이 마시는 봄이다.      

뜨거운 물이 숙우를 달구며 식는다. 제 열기로 다기를 데우며 식어가다. 세상사 분심이 잦아들 듯 뜨거운 기운이 한소끔 내렸을 때 찻잎을 우려낸다. 녹차마다 제 몸을 풀어내는 빛깔의 뜨거움이 있다. 다도회에서 차를 따르며 눈물이 흘러 이슬처럼 맺힌 여인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다도에는 도의 경지가 있음을 보여준 사진이었다. 


나는 종종 일반적인 다관보다 투명한 유리 주전자에서 찻잎을 우려낸다. 청기를 띤 4월이 노랗게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이 완연하다 싶을 때 차를 따라 마신다. 차를 마시는 소리는 없다. 입안에서 머금은 채 은미하다가 차를 넘기는 소리만 남는다.


엄지손가락으로 뚜껑을 누른 채 한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작은 다관에서 차를 따를 때면, 왼손은 슬며시 가슴으로 간다. 왼손을 가슴에 얹으면 다관이나 찻잔을 잡은 오른손이 경건해 진다. 열심히 살아가는 나에게 나의 마음을 조아려 눈물 같은 경의를 표한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올 수 없다. 하지만 녹차를 마실 때면 찻잎 속 계절이 되돌아온다. 가장 완벽한 색향미청의 시간이 흐를 때 한 방울 남은 녹차도 빛을 잃지 않는다.


사찰에서 차를 즐기는 스님들은 대부분 홍안이다. 그래서 동안이다. 나이가 들어도 피부가 깨끗하고 환하다. 녹차의 기운과 빛깔이 얼굴 피부로 비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녹차 예찬은 이상범 시인의 녹차 詩들의 경지 앞에서는 한없이 어설프다.

녹차만 소재로 한(68편의 작품 중에서 예닐곱 커피 시가 있다.) 이상범 시인의 디카시집 ‘녹차를 들며’에서 녹차의 기품 있는 멋과 깊이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반은 다도인(茶道人)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초승달빛차※ 

칠불사 가는 길에                   



지리산을 풀어 마시니      



물소리가 깨어났다      



한 모금 다시 마시니      



하늘빛 더욱 맑고       



초록 물입에 물고서       



산을 내려 놓는다.                



초승달빛차우전차雨前茶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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