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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Nov 03. 2019

동안 피부를 위해서는 검은 커피보다 노란 녹차를

녹차의 첫 여정

녹차만 소재로(69편의 작품에서 커피를 소재로 한 시가 예닐곱 편 있다.) 한 이상범 디카시집 '녹차를 들며'를 출간하고 보니, 아주 오래 전 내가 녹차와 맺었던 첫 인연을 적은 글이 떠올랐다. 


원주의 치악산 뒷자락에는 ‘성남’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산사 같은 그곳 고시원에서 수험생활을 하던 10여 년 전 쯤 처음으로 녹차와 인연을 맺었다. 책을 읽다 지치면 치악산 계곡의 개울로 나가 한밤중 매기 낚시를 하거나, 사냥꾼과 은혜 갚은 까치 전설이 흐르는 ‘상원사’를 찾아 흐트러진 마음을 곧추세우곤 하였다. 

10여명의 수험생 가운데 가장 늦게 합류한 홍 선배가 어느 날 점심 식사를 끝내고 차 한 잔 하자며 자신의 방으로 불러 내놓은 것이 녹차였다. 처음 본 다기세트도 그렇거니와 연신 물을 끓여 세 번씩 차를 우려내 마시는 복잡하고 낯선 시간이었다. 수년 동안 커피의 간편하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는 내게, 녹차를 마신다는 것은 몹시 지루하며 그 맛 또한 밋밋하게 다가와 선배의 녹차예찬에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얼마나 오랜 동안 홍 선배가 녹차를 즐겨왔는지는 노란 색조가 가득 배인 그의 찻잔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말투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동안(童顔)인 모습도 녹차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약간 타성에 젖은 노장 고시생들이 그러하듯 홍 선배 역시 식사가 끝나면 산책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터여서 심심찮게 나를 불러 녹차를 마셨다. 나름대로의 다도법(茶道法)이 있는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녹차 달이는 법을 조금씩 습득했고, 어느 날 그가 녹차를 사러 나가는 길에 골라 준 다관(茶罐)이며 숙우(熟盂), 찻잔, 퇴수기(退水器) 등 간단한 다기를 구입한 후부터 녹차에 대한 나의 본격적인 여정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숙우(물 식힘 사발)에 담긴 물의 온도를 맞추는 일이나, 차 잎이 든 다관에 부을 물의 양이며, 무엇보다 몇 분 정도 다려야 고운 색조가 나오는지에 온갖 신경을 다 썼으니 다술(茶術)을 익히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한동안 제대로 향이나 맛을 음미할 줄도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 숙우에 담긴 물을 적절히 식혀내는 것도 서툴러 우려낸 차의 색이 탁하고 붉기 일쑤여서 맛은 왜 그리 떫기만 하던지…. 하지만 달리 다도(茶道)라 했겠는가. 그렇게 두세 달을 꾸준히 달이고 우려내다 보니 온도를 맞추기 위해 숙우를 만져보는 손끝이 예민해지고 차가 적당히 우러나는 시간에 따라 낼 수 있게 되자, 제법 색(色)·향(香)·미(味)를 음미하는 여유가 생겨 선배와 청담(淸談)을 나누며 녹차에 흠뻑 빠져들었다.      

다기는 주로 하얀 백자만 고집했다. 은은한 색조가 백자에서 더 두드려져 산란한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주기 때문이다. 본래 야생 녹차는 그 향이나 색이 재배 녹차보다는 진하지가 않다. 물론 천연(天然)의 깊이야 더 하겠지만 애초 태평양제다에서 나오는 설녹차로 시작 하다 보니 야생 녹차에는 쉽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재배녹차의 보다 진한 색과 향이 더 빨리 녹차와 가까워지도록 했는지 모른다. 색과 향과 미 중에서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어느 하나를 고집해 즐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 가지 모두를 완상(玩賞)한다고 한다. 녹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잠자리를 혼란스럽게 하던 커피를 멀리 했고 좀 더 예민한 미각을 갖고자 십 수 년 피워온 담배를 끊을 정도로 몰입해가면서 차 생활이 삶의 일부가 되어갔다.      


차에서 나는 싱그럽고 맑은 향도 향이지만 차를 마시고 난 후의 감미로운 뒷맛이 개운하기 그지없다. 커피의 뒷맛처럼 씁쓸하면서 달착지근한,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고요한 맛, 그것은 오랜 수험생활로 지친 심신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용(中庸)의 기(氣) 역시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명상의 여지를 주는 것이다.      


서 너 해전 그토록 즐겨하던 녹차도 그만 두고 말았다. 내 영혼이라 여기던 형이 불치병을 얻어 하루하루 생명을 내려놓고 있었고, 수험생활 동안 누구보다 오라비를 잘 다독여 주던 누이동생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던 터라 녹차를 마신다는 것이 사치스러웠고, 긴 수험 생활도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소용돌이치던 슬픔을 조금이라도 극복해보려고 얼마 전부터 수필 습작을 하기 시작하는데 근래 자꾸만 녹차 생각이 나는 것은 왜 일까? 

생각해보니 이 수필이라는 것이 다도(茶道)와 흡사했다. 뜨겁게 달구어진 삶의 체험을 그대로 부어두면 수필이라기보다는 체험 수기가 더 옳을 것이다. 주인은 자신의 체험을 이성이라는 숙우에서 잠시 머물게 하고 감성이 든 다관에 부어 색과 향과 미를 우려내 놓으면 찾아온 객(客)은 서서히 음미하기 시작할 것이다. 글을 읽다 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색조에 반할 것이고 코끝에 스미는 향에 취할 것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감미로운 맛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니, 아름다운 수필 작법이 다도와 비슷하다고 하여 지나친 비약은 아닐 터이다. (2002년 씀)     

그림 • 신흥균 화백의 다완

         



물소리-녹차를 마시며  


     

               

물소리 베고 누우면      



별자리도 자리를 튼다    

   

 

적막의 끝을 잡고   

      


한 생각 종지로 밝히면     

   


구천동九千洞 여문 물소리가     

 


산을 끌고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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