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리를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받아 들이려할 때 매우 큰 장애로 다가오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영혼불멸 혹은 지옥불 문제이고 쉽게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삼위일체 교리이다. 혹시라도 지하철 같은 데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를 듣다보면 절로 거부감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이에 대해 과감하게 물음을 제기하고 그 해답을 성경을 통해 구하려 한 아주 의미 있는 책을 읽게 되었다. 「당신의 하나님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상당히 도전적인 타이틀이었는데 얼핏 당신이 믿고 있는 그런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책은 크게 영혼불멸, 삼위일체, 예정론을 다루고 있다. 아마 전통 기독교에서 가장 중하게 여길 뿐 아니라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교리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들 문제에 대해 오직 성경을 통해 묻고 답하려 한다. 저자 자신이나 우리의 세속적인 상식과 논리에 기대지 않고 전통 기독교에서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성경의 무오류성에 기대어 즉,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것도 특별히 성경의 어떤 일부가 아니고 창세기, 모세 오경에서부터 복음서 바울 서신에 이르기 까지 신, 구약 전부를 골고루 다루고 있다.
우선 책 첫머리에서 저자는 내전을 피해 시리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보트에서 비참하게 죽은 아기 쿠르디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과연 이 아기도 꺼지지 않는 불꽃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느냐고 묻는다. 영혼불멸과 지옥 불 교리이다. 비기독교인이 가장 반감을 느끼는 문제인데 저자는 성경 첫 부분, 창세기 3:19절을 인용하여 설사 죄를 범한 인간이라도 그냥 흙으로 돌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이밖에도 욥기나 바울서신을 통해 죄인의 소멸과 의인의 부활을 증언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공포와 저주의 대명사로 생각하는 지옥에 대한 어원 뜻풀이를 통해, 특히 마10;28절처럼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는 자’라는 구절로써 육신 뿐 아니라 영혼도 멸망하게 됨을 강조한다. 아울러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오히려 배교한 자들이 영혼불멸을 믿었음을 이사야65;4절에서 밝히고 있다.
중앙일보-당신이 믿는 그런 하나님은 없다
다음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마16:16절을 인용하여 예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후대의 아타나시우스 신경에는 에수와 성령과 하나님을 모두 주님이라 부르면서도 세분이신 주님이 아니라 한분 주님만 계신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도 이 권위를 의심하지 못하게 했지만 복음서에는 예거할 수 없을 만큼 여러 곳에서 예수는 다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로 기술되고 있다.
신약뿐 아니라 그 예표가 되는 구약에서도 이 같이 예언되고 있음을 저자는 수많은 성경의 인용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흔히 삼위일체의 근거로 삼고있는 성경구절 또한 자세하게 그 낱말들을 살펴보면서 그 주장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이밖에도 엘로힘이라는 단어나 신이라는 단어의 다양한 사용법을 밝히고 대제사장이시며 대속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과 삼위일체의 모순도 지적하고 있다.
다음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 역사를 통해 예정론의 허구를 증명한다. 흔히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택받은 민족이라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였고 그때마다 가혹한 심판과 응징을 받았다. 결코 한 번 선택 받았다고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다. 수많은 성경의 예시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 뿐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운명도 마찬가지임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말씀에 순종하는 솔로몬은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지만 말씀에서 떠난 솔로몬은 비참한 나락에 떨어져야 했다. 따라서 칼빈의 예정론의 근거가 되는 도르트 신조의 모순이 바로 성경을 통해 입증된다.(p245)
이밖에도 이 책은 부록처럼 진화론과 모세5경의 신비 그리고 장구한 교회사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4부는 유명한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저자의 비판인데 종교의 입장과 과학의 입장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필 수 있고 5부에서는 모세 오경에 나타난 안식일과 희년 등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내용이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설득력 있게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6부에 나타난 태초 이후의 유구한 교회사는 결코 어떤 특정민족이나 특별한 개인이 아닌 오직 믿음에 의해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계보를 밝혀주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지극히 논쟁적일 뿐만 아니라 정통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와 배치되는 결코 쉽지 않은 주제들을 저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명료하고 담백하게 풀이해준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처음 말한 것처럼 모든 해답을 성서로 말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여러 번 접했을 다양한 성경구절을 통해 스스로 설명하게 한 것이 첫 번째 비결이다. 하지만 이 책의 훌륭한 편집 또한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제시와 그 해답이 되는 성경구절을 각기 활자체를 달리 해서 가독성을 높였고 적절한 여백과 고딕체의 활용으로 논리를 보다 생생하게 입체적으로 전달해주었다.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따분했을지도 모를 내용을 마치 한편의 서정시처럼 아니면 따뜻한 희곡이나 무슨 스릴러 소설처럼 흥미롭게 편집을 한 것이다. 책표지를 비롯하여 날개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래도 결국 저자 자신이 이 책의 핵심 관건이었고 지금까지 살아온 저자의 인생역정이 책 내용에 대한 신뢰를 보장했다. 시골 가난한 농부로 우직하게 유기농법을 실천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고집과 신념을 잃지 않았고 그것이 자녀교육에도 이어져 세상의 어떤 스카이 캐슬도 이룩하지 못한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다섯 남매를 모두 서울의대 등 최고의 명문을 통해 의사나 약사 등 누구나 부러워하는 전문직 종사자로 키워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성과를 「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2001)」, 「가슴 높이로 공을 던져라 1, 2(2013)」 등 세권의 책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 같은 힘이 이 책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거듭 책을 읽은 행운을 기뻐하며 평소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마음 한편 늘 가시지 않던 심각한 의혹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무리 어리석은 죄인이라도 결코 영영 지옥 불에 가두실 그런 잔혹한 분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인간을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드는 예정론이나 도무지 신학자들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삼위일체 등에 관해 명쾌한 답을 찾도록 도와준 저자의 노력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작금의 기독교를 보면 너무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이기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만 매몰된 모습에 안타깝기 그지 없었는데 시원한 사이다를 마신 기분이었다. 가난한 자를 위해 입은 옷까지도 벗어주라 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치심과는 달리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땅값 비싼 강남으로 진출하지 못해 안달이다. 예수님은 불쌍한 죄인을 위해 스스로 목숨까지 십자가에 내놓으셨는데 이 땅의 교회지도자라는 분들은 남을 저주하고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이런 정통 기독교인이라는 자들 때문에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안녕하시지 못할 것 같아 염려스럽다. 이에 대해 이 책은 가장 부드럽고 조용한 방식으로 그러나 가장 통렬하게 한방 먹이는지도 모른다. 정말 반갑고 후련하다. 이 기쁨과 흥분을 미처 가눌 수 없어 몹시 두서없고 맥락이 부족한 장광설을 늘어놓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