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주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고역이었다. 알람 소리로 겨우 몸을 일으키면, 이미 마음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 짓눌려 있었다.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일거리, 매번 꼬투리를 잡는 상사의 비아냥, 같은 팀 동료의 모욕적인 말투, 점심시간조차 함께 먹을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 그리고 퇴근 후 돌아와도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 없는 어두운 방. 그나마 마음속 기도가 순간을 버티는 힘이었다. 하지만 기도는 늘 희망 고문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승주의 삶은 말라비틀어진 화분 같았다. 물 한 방울 없이 버티는 식물처럼, 감정 없이 그저 버티는 것.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재혼한 어머니와는 몇 년째 연락을 끊었고,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타인의 얼굴이었다. 연애는 오래전 끝이 났고, 신용카드는 몇 달 전부터 한도 초과가 일쑤였다. 월세는 밀려가고, 대출은 연체 중이며, 냉장고에는 소주 한 병과 케첩 한 통뿐이었다. 삶 자체가 쥐코밥상이었다.
승주는 자신이 점점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자기 혼자만 멈춰 서 있는 거 같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누구도 그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또한 스스로 구원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불 꺼진 방에서 휴대폰을 바라보다 배터리가 꺼진 순간, 무언가 탁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더는 버틸 이유가 없다는 생각처럼…. 삶을 체념하듯 휴대폰을 팽개친 채 승주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꿈속은 이상하게 현실 같았다. 칠흑 같은 어둠 한가운데, 눈부신 빛이 내려앉았다. 하얀 깃털이 천천히 흩날리고, 그 사이로 누군가 내려오고 있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날개를 펼친 존재…. 승우는 본능적으로 그를 알 수 있었다. 심판 타로카드의 천사, 가브리엘이었다.
천사는 승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운명을 바꿀 기회가 필요하냐?”
승주는 숨이 막히는 듯해 입을 뗄 수 없었다.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가브리엘이 바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78일 동안 너는 매일 한 장의 타로카드로 너의 하루를 살아야 한다. 마지막 카드가 너의 심판이 될 것이다.”
던지듯 말을 마친 가브리엘은 금세 사라졌다. 가브리엘이 떠난 자리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타로덱이 희미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오래된 듯 낡았지만 신비로운 문양이 빛나는 카드였다. 승주가 카드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새벽녘, 바깥세상은 여전히 어둠이 짙었다. 머리를 맑히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하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엔 지난 꿈자리가 살아 있는 듯 남아 있었다. 단지 꿈이라고 하기엔, 가슴 깊이 뭔가가 울리고 있었다.
승주는 천천히 일어났다. 침대 아래 깊숙이 넣어둔 상자를 꺼냈다. 먼지가 수북한 그 상자 속에는 오래전 선물 받은 타로카드 한 벌과 세이지 한 다발, 하얀 초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왜 그것들을 꺼내든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망설임이 없었다.
세이지에 불을 붙이자 연기가 희미하게 방안을 채웠다. 두 손으로 카드를 감싸 쥔 승주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세이지 향기를 들이마시며 자신과 카드를 정화시켰다.
“진짜 내 삶이 바뀌게 해주세요.”
마음속 기도를 마친 승주는 스프레드 천 위에서 타로카드를 천천히 오랫동안 섞었다. 손끝으로 카드를 돌리며, 승주는 알 수 없는 흐름을 느꼈다. 그것은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작게 접은 스프레드 천을 책상 위로 올린 승주는, 셔플된 카드 78장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이제 맨 위에서부터 한 장씩 매일 뒤집으며 78일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그 첫 번째 카드가 승주의 손에서 뒤집힐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