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승주는 직장 내 괴롭힘, 가족과의 단절, 연애 실패, 빚 등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견디며 살아가는 30대 초반의 남성이다. 삶에 대한 의욕은 사라졌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침묵 속에서 점점 투명해져가는 자신을 느낀다.
어느 날 밤, 승주는 꿈에서 빛나는 날개를 지닌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다. 가브리엘은 “78일 동안 매일 타로카드 한 장대로 살아가면 운명이 바뀔 것”이라며, 마지막 날의 카드가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될 거라고 예언한다. 이 꿈은 단순한 환상이 아닌, 그의 내면을 뒤흔드는 계시로 다가온다.
다음 날 새벽, 승주는 오래된 타로카드와 세이지, 촛불을 꺼내 정화 의식을 치른 후 78장의 카드를 경건히 셔플하고 하나로 포갠다. 그리고 첫 번째 카드를 뒤집는 순간, 그의 새로운 삶과 치유, 변화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 소설은 78장의 카드가 이끄는 78일간의 자기 변화를 그려나가는 운명의 기록이다.
셋째 날 아침, 승주는 느즈막이 눈을 떴다. 창밖에는 부드러운 햇빛이 도로 위를 덮고 있었고, 창문을 여는 순간, 차가우면서도 상쾌한 바람이 머리를 맑히며 느리게 흘러들어왔다.
승주는 여느 때처럼 책상 위 카드를 바라보았다.
78장의 카드 중 오늘의 하루를 가리킬 한 장.
승주는 자신의 운명을 여는 열쇠이자 신탁의 대상인 카드 더미를 향해 짧은 침묵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카드가 건넬 메시지를 경건히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승주가 세 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컵 10(Ten of Cups).”
순간, 눈이 멈췄다.
하늘에는 무지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열 개의 컵이 반원 모양으로 떠 있다. 무지개 아래, 부부는 서로 팔을 벌린 채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란히 서 있고, 그들 곁에서는 두 아이가 손을 맞잡고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풍요와 평화, 감정의 완성….
그림 속엔 행복해 보이는 가족 풍경이 있었다.
‘내게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승주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림처럼 손을 맞잡을 사람도, 안기듯 기대올 아이도, 마음을 놓고 웃을 가족도 없었다.
승주는 무의식처럼 휴대폰을 들어 어머니의 번호를 눌렀다가, 다시 지웠다.
그 번호는 여전히 저장돼 있었지만, 통화 버튼을 누른 건 4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승주는 오랜만에 동네 시장을 찾았다.
지수와의 만남 이후, 무언가 일상의 리듬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노점 앞에 쪼그려 앉아 나물을 다듬는 아주머니들, 어린 손을 잡고 장을 보는 젊은 부부, 커다란 떡볶이 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
그 모든 풍경이 생경하고도 낯익었다.
승주가 멈춘 곳은 떡집 앞이었다.
“혹시….” 하며 떡집 아주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자 승주는 깜짝 놀랐다.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자주 오던 곳. 초등학교 졸업식 날 떡을 사며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승주는 엄마와 잘 살고 있다며 거짓말을 하고는 인절미 한 봉지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