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수필 5집 '누가 저 산국을 다 베었을까'

by 해드림 hd books

동부수필 문학회, 동부수필 5집 '누가 저 산국을 다 베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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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수필문학회 저

면수 288쪽 | 사이즈 152*225| ISBN 979-11-5634-651-7| 03810

| 값 18,000원 | 2025년 09월 30일 출간 | 문학 | 수필 |


문의

임영숙(편집부) 02)2612-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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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동부수필 문학회(회장 이희순)의『동부수필 5집 ― 누가 저 산국을 다 베었을까』는 여수·순천·광양을 품은 생활의 언어로 오늘의 수필을 다시 호흡하게 하는 수필집이다. 2010년 원로 수필가 임병식 선생을 중심으로 시작해 동인지와 합평, 강연, 문학기행을 꾸준히 이어 온 동부수필문학의 축적이 이 한 권에 응축되었다. 권두시 엄정숙의 「개미에 관한 보고서」가 보여주듯, 이 수필집의 시선은 거창한 서사의 바깥에서 ‘발과 발의 연결’로 세계를 읽는다. 일상의 미세한 진동을 좌표 삼아 영토를 확장하는 개미의 문명을 따라가다 보면, 지역성과 동시대성이 서로의 빛을 키워 주는 현장을 만나게 된다. 중앙 문단의 관심과 호평으로 이미 증명된 저력은, 이번 5집에서 ‘생활·사유·문장’의 균형으로 한 발 더 나아간다.


목차를 펼치면 매 장이 하나의 작은 세계다. 하롱베이의 원산경을 ‘몽유도원도’에 비유하며 보는 법을 묻는 임병식의 기행, 여행 가방에 묻은 이민의 기억과 상실을 문장으로 다독이는 엄정숙의 「가방을 차렷 자세로 세우다」, 섬의 사계와 들꽃의 생명력으로 존재의 버팀목을 확인하는 곽경자의 「금오도 일지」, 한 장의 사진이 되살린 가족사와 노년의 고요를 담은 윤문칠의 「사진 한 장의 추억」이 그렇다. 로마와 지중해 크루즈의 감응을 신앙과 역사로 깊게 연결하는 김종호, 몸과 마음의 ‘비우기’로 노년의 시간을 리모델링하는 이선덕, 새끼 꼬기의 공정을 글쓰기 미학으로 풀어내는 이희순의 단단한 문장도 눈에 띈다. 양달막의 「붕어빵」이 들려주는 온기, 차성애·박주희·이 화·임경화·오순아·백이석의 페이지에서 번지는 지역 풍경과 인물의 숨결은 생활 산문이 도달할 수 있는 감도의 지평을 넓힌다.


이 수필집의 힘은 ‘작은 것을 오래 보아 큰 것을 말하는’ 태도에 있다. 산국의 향기를 따라 고등어와 매가리의 철을 읽어 내듯, 동네의 길·가방의 바퀴·한 장의 사진·한 줄의 새끼가 삶의 은유로 변모한다. 그래서 독자는 읽는 동안 지역을 넘어 ‘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누가 저 산국을 다 베었냐는 탄식은, 예초기의 칼날에도 다시 꽃망울을 올리는 생의 자구力을 확인하는 질문으로 바뀐다. 개미의 연대기와 산국의 귀환 사이, 동부수필문학의 문장은 서로의 삶을 비춰 주는 등불이 된다. 오늘 우리의 일상을 더 잘 살고, 더 잘 기록하고, 더 잘 나누기 위해—이 수필집은 지역 수필의 현재이자 다음을 여는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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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2025년 현재 이희순 수필가가 회장을 맡아 이끌고 있는 ‘동부수필 문학회’는, 수필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지역 수필 문학의 저변확대와 질적 수준 향상을 통한 창작력 제고 및 동호인 간 교류와 우호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10년 12월 당시, 원로 수필가 임병식 외 12인의 여수, 순천, 광양 지역 수필 인이 모여 임병식 지도위원, 엄정숙 회장, 양달막 총무 등을 선출하고 매월 한 번씩 모이고 있으며 현재 대다수 회원이 수필작가로 등단하였고 <한국수필> <수필세계> <그린에세 이> <에세이21> <푸른솔문학> <창작산맥> 등 수필 전문지에 작품 기고, 각종 문학상 수상 등으로 중앙 수필 문단의 관심과 호평을 받고 있다. 2023. 4월, ‘법인으로 보는 단체’ 등록 (고유번호: 229-82-70059)

2015년 11월 동인지 <동부수필> 창간호, 2019년 10월 제2집, 2023년 제3집<민들레 홀씨>, 2024년 제4집 <까치 소리>를 출간하였고 매월 모임을 통해 회원 작품 합평 및 토론, 유명 수필가 초청 강연, 수필 교실, 문학기행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으며 그동안 시인 등단 3명, 수필작가 등단 7명, 지역 문학상 수상 2명, 중앙 수필 전문지 작품 게재 60여 회, 개인 수필집 및 시집 출간 10회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한편 특히 임병식 지도위원의 작품이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리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영상 자료


차례


권두 시│개미에 관한 보고서 - 엄정숙 4


임병식

내가 본 선경(仙境) 14

부상(扶桑)과 함지(咸池) 19

벼농사 23

호롱불 29


엄정숙

가방을 차렷 자세로 세우다 36

어긋난 당일치기 40

태풍의 계절 44

장날을 스케치하다 49


곽경자

그땐 그랬지 55

금오도 일지 9 59

추석 장을 보면서 63

금오도일지 17 66


윤문칠

사진 한 장의 추억 71

생선 세 마리 75

아버지의 군불 사랑 78

초복 날의 갯장어 81


김종호

로마와 지중해 크루즈 여행 86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준, 멋있는 보상 91

성지순례와 희년 96

까르페 디엠(carpe diem) 101


이선덕

리모델링 109

슬픔은 수용성이다 112

산 벚나무 꽃 필 때쯤 115

슬픈 초대 118


이희순

새끼를 꼬아보자 123

굴종의 시대 128

기역 디귿 시옷 131

웃줄로 태어나 138


양달막

붕어빵 144

외팔이 철학자 149

주차장의 남학생 153

인도의 주차 풍경 157


이승훈

소멸적 기쁨 164

마당이 있는 집 1 168

마당이 있는 집 2 172

마당이 있는 집 3 176


차성애

그 겨울 우리는 따뜻했다 182

다시 집이 되다 186

기적을 걷는 아이들 190

빙판 위의 눈물, 피로 쓴 대한독립 195


박주희

모사금 노을을 듣다 201

얼굴 바위를 경청하다 205

백야도 길을 닫다 208

만성리 블루스 212


이 화

홀로 사는 즐거움 217

오래된 마당을 만나다 221

강물을 따라 마음도 흘러갔다 225

가을의 속삭임 앞에 서다 229


임경화

그때 노래가 있었다 235

이야기가 삶을 관통할 때 240

지리산으로 달려간다 246

정다운 나의 겨울 친구 251


오순아

상애떡 258

그녀의 마당 262

황리단길에서 타로점을 보다 266

이불 홑청과 재봉틀 270


백이석

빈센트 반 고흐의 숨결을 찾아서 276

용궐산 하늘길 오르며 280

제주도 참새 할매 283


동부수필문학회 연혁 및 기본현황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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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반복과 연대의 미학, 동부수필을 걷다


동부수필 5집 『누가 저 산국을 다 베었을까』는 여수·순천·광양을 삶의 무대로 삼은 글쟁이들이 일상에서 길어 올린 감각과 사유를 한 자리에 모은 기록이다. 권두시 「개미에 관한 보고서」가 보여주듯, 이 수필집의 시선은 거대서사를 향하기보다 발밑의 질서와 손끝의 노동을 응시한다. 반지하를 횡단하는 개미의 보폭처럼, 이 수필집은 작은 반복과 연대, 익명의 수고에 깃든 문명의 기억을 더듬는다. 지역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 창작의 질을 끌어올리려는 동부수필문학의 지난한 걸음이, 바로 그 미세한 보폭의 총합이었음을 수필집은 조용히 증언한다.

목차를 넘기면 곧바로 ‘보고-기록-성찰’의 삼박자가 분명한 문장들이 독자를 맞이한다. 하롱베이의 원산경을 ‘도원경’으로 포착해 보는 법을 묻는 「내가 본 선경」은 시선의 훈련을, 낡은 캐리어를 ‘차렷 자세’로 세우며 삶의 이력을 더듬는 「가방을 차렷 자세로 세우다」는 사물의 기억을 환기하는 법을 가르친다. 「리모델링」은 버림과 비움의 윤리를, 「새끼를 꼬아보자」는 소재의 선별과 문장 공력을 짚어 글쓰기의 공방(工房)을 열어 보인다. 여행기·생활기·문학론이 서로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이 구성은, ‘생활의 문학’과 ‘문학의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수필 장르의 미덕을 확인시킨다.


제목에 오른 산국은 이 수필집 전체를 꿰는 상징이다. 곽경자의 「금오도 일지(9)」에서 예초기의 칼날을 맞고도 밑동에서 다시 맺힌 꽃망울처럼, 이 수필집의 문장들은 절단과 결핍의 자리를 지나 더 작은 생명과 더 단단한 의미로 되돌아온다. 바닷바람과 장날, 주차장의 풍경과 붕어빵의 기억, 사진 한 장과 성지순례의 떨림에 이르기까지—저자들은 지역의 자연·노동·가족·신앙을 각자의 언어로 길어 올리되, 향토에 갇히지 않고 보편의 감정으로 건너간다. ‘누가 산국을 베었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다시 꽃피울 것인가’라는 응답으로 확장된다.

이 수필집을 작품해석으로 읽는 일은 곧 ‘작은 것의 윤리’와 ‘정확한 보기’의 기술을 배우는 일이다. 한 줄의 문장도 함부로 놓지 않는 장인정신, 타인의 생을 엿보되 판단보다 경청을 앞세우는 태도, 지역의 좌표를 세계의 좌표로 환산하는 상상력이 여기 있다. 독자는 권두시의 보폭으로 걸어 들어가, 산국의 향을 맡고, 낡은 가방의 손잡이를 쥐고, 새끼줄을 꼬는 손놀림을 따라가며, 끝내 ‘나의 일상’이라는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문학의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서문 이후의 해석들은 그 힘의 결을 더 세밀하게 보여줄, 또 하나의 길 표지들이다.


작품1 엄정숙 권두시: 개미에 관한 보고서


첫 연의 개미 행렬은 ‘발과 발의 연결’, ‘일사불란한 보폭’ 같은 공학적 어휘로 묘사되어,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생태학을 넘어 문명론으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반지하·하이웨이·좌표·영토 확장 같은 도시적·측량적 어휘는 미시세계(개미)와 거대도시(아파트)의 구조적 닮음을 포착하며, ‘풍화되지 않은 문명’이라는 역설적 정의를 통해 지속성과 생존의 기술을 찬양한다.

중앙부의 전환은 ‘주술도 없고 종교도 없어/ 불러들일 것은 동족의 허기뿐’이라는 냉정한 선언에서 비롯된다. 욕망의 핵심을 ‘허기’로 환원함으로써 군집의 질서는 숭고가 아니라 결핍의 관리에서 비롯됨을 드러낸다. 그 결과 ‘하루의 중심이 지하로 쓸려’ 내려가는 도시의 음영과 ‘층간소음’ 같은 현실적 디테일이 포개지며, 개미의 생태는 곧 도시 하층의 생존학으로 비유된다.

말미의 ‘반상회’와 ‘동네 별’은 인간 사회의 자구책과 우주의 질서를 병치하여, 인간이 개미를 제거하는 순간조차 개미의 연대기는 다시 쓰인다고 역설한다. 퇴치조차 생태적 순환 속 사건일 뿐이라는 인식—즉 인간 중심주의의 상대화—가 시의 윤리다. 작고 반복적인 보폭이 역사를 쓴다는 통찰이 권두시로서 수필집 전체의 시선을 예고한다.


작품2: 임병식의 내가 본 선경(仙境)

저자는 ‘주마간산’의 관념을 반박하면서, 오히려 달리는 버스라는 비(非)정면의 관람 조건이 하롱베이 풍경의 ‘대작 파노라마’를 통째로 포착하게 했다고 진술한다. 이는 “가까이에서의 상세”보다 “멀리서의 총체”를 미학적 진실로 제시하는 관점 전도이며,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소환해 회화적 시야(병풍식 구도, 부감·조광효과)로 풍경을 해석한다.

중앙부의 미시적 교양 서술—작품 반출설화, 섬의 지질 형성, ‘승솟’의 어원—은 감상의 근거를 풍부하게 하면서도, 끝내 저자가 택하는 것은 ‘낱개’가 아닌 ‘한 덩어리’로 보는 거리의 미학이다. 이는 수석 애호가라는 사적 취향과 맞물려, 실루엣을 통한 형상 인식(형상-실루엣-총체)의 미학적 일관성을 세운다.

말미의 가이드 비판과 ‘뷰포인트 추가’ 제안은 감상문을 정책적 제언으로 확장한다. 보기의 방식이 곧 세계의 의미를 규정한다는 인식—‘보기의 정치학’—이 텍스트를 관통하며, 여행기는 장소 설명을 넘어 ‘시선의 훈련’을 요청하는 수필로 승격된다.


작품3: 엄정숙의 가방을 차렷 자세로 세우다


의인화된 가방은 이동의 장치에서 기억의 용기로 변모한다. ‘차렷 자세’라는 군대식 명령어는 사물에 부여된 윤리적 긴장(정리·직면)을 불러오고, 폐기물 스티커·폐차 장면의 병치는 사물과 인간 관계의 애도 과정을 섬세하게 환기한다. 사물은 감정을 ‘빚는’ 대상이 아니라, 감정이 ‘전이’되어 깃든 매체로 정의된다.

중앙부의 인용과 교양망—「규중칠우쟁론기」, 골드버그, 옥타비오 파스—는 사물-의인화-글쓰기의 고리를 견고히 한다. 가방에 수납된 것은 옷가지가 아니라 시대의 단면(트럼프의 반이민 담론, 구텐베르크 성경, 팬데믹과 이별)이며, 사물 서사가 곧 이주·상실·애도의 현대사로 확장된다.

결말부의 맥도날드 장면은 ‘의족을 한 아이들’과 한국말 인사라는 작은 교차로 보편적 연대의 감각을 불러낸다. 가방을 다시 ‘세운다’는 행위는 과거로 복귀가 아니라 기억을 ‘존엄하게 보관’하려는 의지다. 사물이 삶을 지탱하는 제3의 어깨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물수필의 정수다.


작품4: 곽경자의 금오도 일지(9) – 누가 저 산국을 다 베었을까


텍스트는 섬의 일상적 생태를 감각의 목록으로 쌓아 올린다. 새벽 해무, 지렁이, 참새·뱁새, 까치와 까마귀의 역학 등은 산책길을 ‘자기성찰의 통로’로 전환시키며, 바다의 색과 하늘의 모양이 매일 달라지는 변주 속에서 삶의 리듬과 자연의 호흡이 동기화된다.

산국과 쑥부쟁이는 봄-여름-가을을 관통하는 ‘돌봄의 대상’이자 ‘기다림의 은유’다. 향기에 ‘고등어와 매가리’가 오른다는 해안마을의 속신은 자연-노동-생계가 한 몸이라는 토착적 세계관을 드러내며, 독자는 향(香)을 매개로 인간·식물·어족이 연결되는 생태적 공감각을 체험한다.

예초기의 칼날은 공동체 유지의 합리(도로 관리)와 사적 애도의 정서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잘린 밑동에서 다시 맺힌 ‘작은 꽃망울’은 상실을 재생으로 돌려세운다. 제목의 질문 ‘누가 베었는가’는 범인을 찾는 윤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의 생태윤리로 이동한다. 봄부터 눈으로 길러낸 정성은 결국 ‘다시 피는 능력’으로 귀결된다.


작품5: 윤문칠의 사진 한 장의 추억


한 장의 사진은 가족 연대기의 매개이자 시간이 응축된 저장매체로 등장한다. ‘천진난만한 웃음’과 ‘국동마을’의 기억은 과거를 현재로 호출하고, ‘어머니’라는 보편적 상징을 통해 개인서사가 공동 감정의 장으로 확장된다. 사진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관계(손녀들) 속에서 재맥락화되는 살아있는 아카이브다.

두 딸의 성정, 이름의 사연(‘다나’와 ‘송’), 서로 다른 진로는 양육의 결과를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개인의 성숙 뒤에 가려진 배우자의 헌신을 새삼 조명하며, 기억의 주어를 ‘나’에서 ‘우리’로 수정한다. 그 결과 사진은 ‘나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후반의 노년 서술—시력 저하, 운전 포기, 스며드는 외로움—은 시간의 비가역성을 인정하면서도, 손녀의 손을 잡는 촉각적 순간에 ‘현재의 충만’을 발견한다. 한 장의 사진을 오래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멈춤의 기술’이며, 속도를 줄여 사랑의 온도를 감지하려는 윤리적 선택임을 보여준다.


작품6: 김종호의 로마와 지중해 크루즈 여행


여행은 치유·구도·비움과 채움이라는 자기서사의 키워드로 정의된다. 장기 저축과 마일리지 적립, 동반자 수배 같은 준비의 디테일은 ‘꿈은 구체성을 필요로 한다’는 윤리를 설파하며, 희년(Jubilee)이라는 종교적 시간대가 여행을 신앙적 실천으로 고양한다.

경로 서술은 ‘장소 목록’이 아니라 감각·지식·경건이 교차하는 경험의 연쇄다. 바티칸—오디오 가이드—사그라다 파밀리아—마르세유—제노바로 이어지는 동선은 미학과 문명사를 겹쳐 읽게 하고, ‘도시 자체가 역사’라는 체험을 강조한다. 초대형 친환경 크루즈의 압도감은 현대 문명의 장치로 등장하되, 그 안에서 저자는 여전히 성소(聖所)를 향해 내면을 수렴한다.

귀결부에서 여행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1만 년의 시간 여행’으로 명명된다. 감사의 대상(하느님·동행·자기 자신)을 나열하는 엔딩은 순례자적 겸허를 드러내며, 성취의 서사를 자기 찬양이 아닌 관계의 회복으로 정돈한다. 이 여행기는 ‘잘 본다’보다 ‘잘 감사한다’를 배치하는 수필의 품격을 보여준다.


작품7: 이선덕의 리모델링


윗집 공사의 굉음에서 출발한 시선은 곧 ‘버림/교체’라는 주거의 논리를 ‘노화/자기 돌봄’의 생애사로 전이한다. 쓰레기장에 쌓인 집기와 가전은 신체의 고장, 병원 대기실 풍경, 휠체어의 이웃으로 이어지며, 타인의 모습 속에서 미래의 자기를 ‘예시’로 목격하는 섬광을 발생시킨다.

핵심 개념은 ‘비움’이다. 그러나 비움은 공허가 아니라 윤리적 과업으로 제시된다. 아집·욕심·자존심·미움의 매듭을 푸는 일은 물건의 폐기보다 훨씬 고된 내적 리모델링이다. ‘사랑보다 용서가 더 어렵다’는 자각은 감정의 구조공학적 핵심을 찌르며, 정서의 배관을 새로 깐다.

결말의 선언—사람은 재활용이 없다—는 존재의 유일성과 유한성을 동시에 상기시킨다. 그러기에 가능한 리모델링은 재도색이 아니라 구조 보강, 곧 마음의 단순화와 질서 회복이다. 이 수필은 일상의 소음을 영적 공사로 전환시키는 모범적 인문 에세이다.


작품8: 이희순의 새끼를 꼬아보자


전통 노동의 공정(검불 제거—적신—잇기—사리기)을 글쓰기의 단계로 치환한 메타수필이다. ‘넌출진 짚단=소재’, ‘검불 제거=군더더기 삭제’, ‘물 뿌리기=유기성 점검’이라는 대응은 창작의 물리학을 촉각적 비유로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글쓰기의 추상 이론이 손의 기술로 환원될 때, 문장은 다시 삶에 닿는다.

형상화에 대한 단호한 요구는 ‘사진 찍기’가 아니라 ‘그림 그리기’라는 명제에서 요약된다. 관념(아름다움, 외로움)을 구체로 끌어내는 기술이야말로 문학의 본령이며, 명사·동사에 자유를 부여하는 언어관은 ‘명사+동사’의 간결 구조를 옹호하면서도 은유의 변신 가능성을 열어둔다.

후반부의 비문 사례와 금기 목록은 교조가 아니라 ‘질 좋은 새끼’의 필요조건으로 제시된다. 잇대기의 요령(밑동이 삐져나오지 않게), 힘 조절(퉁퉁하지도, 흐느적거리지도 않게), 마지막 사리기(교정)는 문장 다듬기의 공정과 정확히 포개진다. 노동의 미학이 곧 문장 윤리라는 점을 정교하게 설파한다.


작품9: 양달막의 붕어빵


이 글은 ‘먹거리’의 향수를 개인·계급·존엄의 문제로 확장한다. 산책길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질문 ‘오늘 붕어빵 장사가 안 나왔던가요?’는 겨울 바람 속 결핍의 온도를 전한다. 붕어빵은 포만의 대상이 아니라 위로의 형식이며, 그 부재가 낳는 허전함은 늙음과 고독의 질감으로 번진다.

과거 서사의 삽입—부잣집 딸의 시혜와 자존심, 60년대 소년의 과식 일화—는 붕어빵을 둘러싼 권력과 결핍의 역사를 겹쳐 놓는다. 베풂이 ‘똘마니 만들기’로 전락할 때 수혜는 굴욕이 되고, 넘치는 양도 사랑 없는 제스처라면 모멸이 된다. 음식은 사회적 관계의 거울이라는 문장 없는 명제가 선명해진다.

현재로 돌아온 마지막 에피소드(단골 가게의 오해와 무례)는 ‘맛’보다 ‘태도’가 기억을 규정함을 입증한다. 그래서 저자는 할아버지에게 건넬 세 마리의 붕어빵을 상상하며, 가격·결제·자존심까지 가늠한다. 타인의 존엄을 헤아리는 상상력 자체가 이 글의 결말이며, 결국 붕어빵은 ‘나눔의 형식’이 지켜야 할 윤리를 상징한다.


따라서,


동부수필 5집에 실린 이 아홉 편은 각기 다른 장르와 어휘로 삶을 더듬지만, 결국 한 줄로 모이면 ‘작은 것의 윤리’라는 공명으로 수렴된다. 개미의 보폭에서 배우는 연대의 문명, 하롱베이를 ‘멀리서 한 덩어리로’ 보는 시선의 훈련, 가방과 사진과 붕어빵에 스민 기억의 촉, 산국과 쑥부쟁이의 재생과 기다림, 리모델링과 새끼 꼬기의 공정으로 다져진 글의 공력까지—이 수필집은 생활·자연·노동·신앙이 서로의 언어가 되어 주는 현장을 증언한다. 여기서 문학은 장식을 덜어내고 관계를 회복하는 기술이며, 사소함을 통해 보편으로 건너가는 작고 단단한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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