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해드림 hd books Mar 23. 2026
사순시기 하느님의 사랑 묵상, 하느님께서 무덤 속의 그를 꺼내시다
영성가 데레사 선생님 원고의 첫 은총 수혜자는 그가 되었다.
그는 오랜 세월 사탄의 제물로 살아왔음을 그분의 원고를 정리하며 깨달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사탄이 쳐놓은 거미줄에서 헤어나지 못한 그였다.
그는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마흔 살이 넘어 사회로 나왔다.
그즈음 평생 그의 후원자였던 형을 뇌종양으로 잃고, 형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해에는 초등학생 두 아이를 둔 여동생을 음주 운전자의 뺑소니 사고로 잃었다. 두 형제가 눈을 감기 전까지, 그는 심장을 헐어가며 그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후 그는 우연히 출판사에서 일을 하다가, 사무실 얻을 돈 한 푼 없이 무작정 지금의 출판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그의 출판 인생은 근심과 두려움과 자존심 찢기는 아픔과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경제적 궁핍으로 날마다 자존심 무너지는 날들이었다. 월요일이 두려웠다. 출근하는 직원의 사무실 문 여는 소리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때론 사무실 전화벨 소리가 경기를 일으켰다. 핸드폰은 거의 매일 무음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난 20년 동안 그의 통장에는 여윳돈이 단 한 푼도 없었다. 그럼에도 직원들 봉급 주고, 임대료 내고, 온갖 빚에 시달리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20년을 버텨온 것이다.
통장이 늘 제로인 상태에서 출판사를 운영해 온 것은 분명히 기적이었다.
그 자신도 지금까지 하느님의 기적 안에서 살아왔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예비하여 주시고, 힘든 일을 극복하며 살게 해주셨는데 그는 하느님이 그에게 원하신, ‘인내와 기다림과 믿음’을 망각한 채 하루의 시작과 끝을 온갖 질곡으로 채우며 죽음이라는 단어를 달고 살았다.
짓누르는 삶의 무게감을 잊기 위해 매일 밤 술을 마시며 잠들었다. 술의 응답이 기도의 응답보다 빠르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술을 마시면 잃었던 보짱도 생기고, 삭막해진 감정이 촉촉해졌다.
그에게 지금 94세인 어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벌써 삶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두 자식을 거푸 앞세운 어머니에게 또 상처를 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간신히 밀쳐내며 살았다.
영성가 선생님의 원고를 읽으며 깨달았다. 분명히 하느님께서는 그를 살게 해주시는데, 그는 사탄의 마수에 걸려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 몸부림치며 살았다는 것을. 아무 일 없이 지나갈 내일 일을, 미리 근심과 두려움으로 앞당기고 있었다. 아무 일 없는 하루가 그에게는 생명이요, 축복처럼 다가왔다.
매일 하느님을 붙들고 살았지만, 미사도 멀리하고, 그토록 열심히 드리던 묵주기도도 외면하였다. 그런데 그분의 원고를 만나기 얼마 전부터 어떤 계기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가는 중이었다. 늘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신다고 생각한 하느님이, 얼마 전 불현듯 자신에게 심은 새싹을 통해, 그동안 자신을 얼마나 아파하며 사랑하고 계셨는지 보여주셨다. 그는 그제야 하느님의 현존하심과 하느님 사랑의 현존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미사를 드리고 묵주를 다시 들었다.
영성가 선생님 원고를 읽기 시작할 때 먼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약 10년 전 그는 암 환자들을 위해 일박이일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4년 가까이 이어갔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더 오래 이어갔을 것이다.
우연히 도로테아 자매를 알았는데, 그 자매는 말기 암 환자였다. 그가 묵주기도를 자주 하는 줄 알고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를 부탁한 것이다. 그가 선뜻 암 환자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게 된 것은 자신의 형 때문이었을 것이다. 투병 생활을 하며 자신의 형이 겪었던 극심한 고통을, 옆에서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안양시 비산동 성당에서 토요일 저녁 특전미사를 드린 후 안양천을 따라 밤새 어둠 속을 걸으며 도로테아 자매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다. 새벽 3-4시 경이면, 서울 신도림쯤 도착하는데 사무실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이면 다시 안양천-한강을 따라 묵주기도를 하며 서울 절두산 성지까지 가면, 오후 2시 3-40분쯤 되었다. 절두산 성지 주일 미사는 항상 오후 3시였다. 그러면 성지에서 미사를 드린 후 묵주기도를 마무리하였다.
도로테아 자매가 세상을 떠난 후, 심리적 육체적으로 몹시 힘들어서 그만두었는데, 하느님께서는 또 다른 자매를 그에게 보내셨다.
L 자매였다. 아들이 사제인 이 자매도 몇 년 동안 암을 앓고 있다가 그와 만날 무렵이 세상 떠나기 3년 전쯤이었다.
그가 스스로 ‘도로테아 순례길’(안양시 비산동 성당에서 절두산 성지 성당까지)이라고 이름 붙인 그 길을 따라 계속 묵주기도 트레킹을 이어갔다. 비가 와도, 어둠 속에서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와도, 혹한 속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사람을 쓰러트릴 듯 내리쬐는 땡볕 아래서도, 걷다가 너무나 지쳐서 안양천 변 공중화장실에서 잠깐 눈을 붙여가며 걷고 또 걸으면서, 주말마다 만사 제쳐 놓고 묵주기도를 바쳤다.
묵주기도를 나가면, L 자매는 자신이 거주하는 암 환자 휴양시설의 다른 암 환자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함께 기도해주길 바랐다. 성지에서 때론 L 자매가 지명해 준 분들의 전대사도 드린 적 있다.
아픈 이들을 등에 업고 기도하는 일이, 정신적으로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는 그때 알았다.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이 밀려오고, 절망이 밀려오고, 그들의 두려움이 묵주기도를 하며 걷는 자신을 짓누르는 거 같았다.
회사가 위태로워도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으로 생각하고 묵묵히 다녔다.
L 자매는 늘 감사해하고, 힘내고, 위로받으며 자신을 위해 밤길을 걷는 그에게 미안해하였다. 그는 지금도 당시 미사를 드리며 가져왔던 양쪽 성당 주보를 모두 모아두고 있다. 자신의 신앙적 보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L 자매는 세상을 떠나기 두어 달 전, 갑자기 돌변하였다. 자신을 위해 바치는 묵주기도가 마치 자신을 공격이라도 하듯 묵주기도를 당장 멈추어 달라고 난리를 치고, 심지어 그가 바치는 묵주기도로 자신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하는 등, 온갖 서운한 말을 하여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는 도무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해 몹시 아팠다. 이성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사이도 아니고, 단지 성당 교우로서 자신을 희생해 가며 기도를 해주었는데 충격이 컸다. 자신의 영혼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
결국 그 묵주기도 트레킹은 40회를 채우고 끝이 났다. 그 상처를 받고 더는 묵주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우연히 L 자매가 세상 떠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형식적으로 그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한 번 했을 뿐이다.
영성가 선생님 원고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L 자매에 대한 서운함을 가지고 있었다. 벌써 10년이 지난 일인데도, 자신이 한 묵주기도가 병세를 더 악화시켰다는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분의 원고에서 사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 그때 L 자매가 사탄의 지배 아래 있었구나’ 싶었다. L 자매는 그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영성과 신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탄의 개입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그는 L 자매에게 너무나 미안하였고, L 자매의 영혼을 위해 마음을 다하여 묵주기도를 바쳤다.
영성가 선생님의 원고에서 사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제서야 묵주기도를 하다가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의 삶이 사탄의 그물에 철저히 걸려 있었다는 것을, 사탄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영성가 선생님이 말한 그 ‘거룩한 담대함’으로, 사탄이 먹여주는, 근심, 두려움, 상처, 우울, 한숨, 슬픔, 비관 등등을 거부하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였다. 다시는 그 끔찍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였다.
오늘 주일 미사의 복음 말씀은 요한복음 11장 1-45절이었다.
예수님이 무덤 속 죽은 라자로를 부르신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신부님 강론을 듣다가 그는 눈물을 쏟았다.
오랜 세월 무덤 속에 있던 자신을 하느님이 부르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을 무덤 속 자신을 하느님이 꺼내주신 날로 기억하고 싶었다.
이제 다시 그는 사탄의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슬픔은 슬픔으로 치유한다고 그는 믿었다. 그가 듣는 모든 노래는 슬픈 노래였다. 희망차고 기쁜 노래는 자신의 감정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었다. 수필을 써도, 시를 써도 모두 슬픈 정서였다. 사탄은 슬픔의 씨앗을 그를 통해 세상으로 퍼트렸을 것이다. 그가 쓴 수필과 시와 노래와 영상을 통해….
슬픔은 사탄의 피였다. 그의 몸에는 온통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슬픈 감정은 모두 사탄의 피였다. 지금까지 그가 슬픔을 심어 써온 모든 수필과 시, 모든 노래와 영상을 모두 삭제해 버리고 싶었다. 심지어 자신의 책들도 없애 버리고 싶었다. 이제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탄의 무덤에서 나오고, 대신 그동안 썼던 슬픈 글들과 그가 만들었던 슬픈 노래들과 영상은 그가 몸부림치며 머물던 무덤으로 몰아넣고,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도록, 움직일 수 없는 바위로 막아두려고 한다.
자신의 비장의 무기인 묵주기도로 사탄의 모든 것을 죽여갈 것이다.
드러나야 하는 하느님의 영광과는 달리 사탄은 드러나는 걸 싫어한다. 은밀하고 교활하게 인간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사탄의 피로 물든 세월이 그에게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모든 변화는 하느님이 그에게 심어주신 새싹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자신의 새싹에게 말한다.
“너는 내 생명이라고, 너로 인해 내가 살아났다고.
늘 두 손으로 받들겠노라고.”
묵주기도를 나가기 전 새벽녘,
창밖에서 작은 새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느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는 영성가 선생님에게 긴 감사의 편지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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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 수필가 5인 신앙에세이집
[이제와 항상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