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쓰기 핵심…좋은 글쓰기, 수필의 서두와 말미

by 해드림 hd books


수필에 있어서 서두와 말미는 한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교적 짧은 글인 수필에 있어서 서두는 아주 중요하다. 한번 잘못 잡으면 길을 잘못 든 것과 마찬가지로 헤매게 되고, 쓰고자 하는 것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말미 처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잘못 마무리를 지으면 이발을 하고 난 후 뒷손질이 잘못된 것처럼 엉성한 작품이 되어 버려 그 맛을 반감시키고 만다.

서두는 내가 어떤 글을 쓰겠다는 예고와도 같은 것으로, 글의 중심을 잡아가는 첫 걸음이다. 그러므로 물레로 실을 뽑아내듯이 신중히 풀어나가야 한다. 수필의 서두는 짧고 명료하거나 신선한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딱히 못 박아 말하기는 어렵고 글감에 따라 유연하게 풀어 가면 된다. 몇 작품에서 서두를 골라보았다.


북경의 겨울, 땅엔 아직도 쌓인 눈들이 남아 있고 거무죽죽한 고목의 가지가 파랗게 갠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저 멀리 하나둘 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왠지 모르게 놀라움과 슬픔에 젖어 버린다. 고향에서 연을 날리는 계절은 이른 봄 2월인 것이다. 윙윙 울리는 소리를 듣고 치켜보면 수묵색의 게 연이나 짙은 주황빛 지네 연이 눈에 띈다. 쓸쓸하게 보내는 기와연도 있다. 그것은 소리를 내지 않게 야트막하게 떠 있어 한층 외로워 보이고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노신의 ‘연’).


필자는 오래된 도자기를 유난히 좋아한다. 여성적이라고 할 만큼 편벽된 애착 비슷한 것이다. 큰 집을 구경하게 되는 경우, 도자기를 보관하는 진열장이 있는가를 먼저 알아보고 그다음에야 화랑(畵廊)이 있는가를 묻는다. 이 좋아하는 순서에 대해 이유를 들어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누구나가 어떤 취미를 지니고 있고, 그것이 너무도 오랜 옛날에 비롯되어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으냐고 변호할 수 있을 뿐이다(찰스램 ‘오래된 도자기’).


우리 동네는 집집마다 목련 한 그루쯤은 심어놓고 산다. 봄이 되면 나무에 잎이 돋기도 전에 목련꽃이 피게 되는데, 흰 학의 떼들이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털이 고운 병아리 떼들이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듯 온 동네가 목련꽃으로 해서 한층 밝은 분위기로 바뀌는 것은 물론, 그 향기가 어찌나 짙게 풍기는지 사람마다 옷에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박연구의 ‘나의 아름다운 목련꽃이여’).

나는 그믐달을 사랑한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하여 감히 손을…….(나도향의 그믐달의 서두)

나는 남들처럼 개라는 축류(畜類)에 대하여 호의나 감정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박태원의 ‘축견무용의 변’)

나무는 덕을 가졌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이양하의 ‘나무’)


수필의 말미는 글을 읽고 나서 은근히 여운을 남기는 게 좋다. 특히 서정수필의 경우, 마치 종소리의 맥놀이처럼 마지막 눈을 떼고 나서도 한동안 은근한 울림이 남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회 비평적 말미는 단호한 처리보다 넌지시 바라는 선에서 그치면 족하다.

다음은 몇 작품의 말미다.

내가 사는 집은 한적하고 외져서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으며, 오동나무가 뜰에 그늘을 드리우고 떨기로 난 대나무와 들매화가 집 뒤에 줄지어 심어져 있으니, 그 그윽하고 고요함은 꽤 즐길 만하다. 그런 중에 북쪽 창에다 세 군자의 초상을 펴놓고 분향하고 읍을 하는 생활을 한다. 이에 편액을 사우재라 하고, 그 연유를 위가 같이 기록해 둔다(혀균의 ‘네 벗이 사는 집’).

먼저 보았던 두 시장은 그 행위가 가증스러워 말할 것도 없이 엄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시장도 형편이 가긍하기는 하나 역시 하루빨리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 세 가지 시장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 불미스럽고 가증스러운 결과가 장래에 틀림없이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을 것을 나는 확신한다(이곡의 ‘해괴한 시장’).

그러나 나는 벌레 우는 소리를 만나고 이제 찾아올 꿈을 기다리고, 그리고 이슥하여선 닭 우는 소리를 먼 마을에서 듣기도 한다(이태준의 ‘밤’).

버스가 왔다. 손을 들어 차를 세우고 몸을 실었다. 녹색의 산봉우리들은 석양에 물들어 빛이 더욱 곱고, 강물은 그늘이 져서 검푸르게 흐른다(윤오영의 '백사장의 하루' ).

언니를 떠나 사랑하는 동생을 떠나 외로운 아주머니를 떠나 용자야 너는 지금쯤 어디로 훨훨 가고 있느냐? 그 큰 허우대하고 낙엽처럼 어디로 혼자 떠나고 있느냐? 한밤중에 이는 바람 소리도 나는 이젠 무심히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 소리를 품은 바람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베개에서 귀를 소스라뜨리며, 행여 사람들의 죽은 혼이 밤이면 저렇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노천명의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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