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통한 ‘글쓰기’…개성 있는 글쓰기와 특장 살리기
사람이 무엇을 보고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은 누구나 대동소이하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얼굴이 펴지고 추한 것을 보면 얼굴에 그늘이 진다. 작가라고 해서 다를 수는 없다. 수필작가는 생활 주변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주로 글감으로 삼는다.
그런 글을 만일 5,000여 명이 써낸다면 한 작가가 한 해에 10편만 써낸다고 해도 그 숫자는 최하 5만 편이 넘을 것이다. 거기에다 옛사람들이 써놓은 글까지 합치면 작품의 총합은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이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것이, 유사한 작품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산경, 사계의 변화, 모정과 같은 것만 생각해보아도 짐작이 가며, 구체적으로는 ‘소나무’와 같은 단일 소재로도 수많은 작품이 쓰였을 법하다.
그렇다고 볼 때, 작품을 쓰는 행위가 그 속에 작품 하나를 더 보태는 의미를 떠나서, 본의 아니게 유사한 작품을 쓰거나 모작의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소재는 한정되어 있고 작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무엇보다도 개성 있는 글을 써야 한다. ‘남다르게 생각’하고 ‘해석’하여 차별화된 글을 써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사고를 자유롭게 하고 문체도 특색 있게 자기화해야 할 일이다.
이를 흔히 쓰고 있는 말로 ‘낯설게 하기’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듯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해야만 다른 이의 글과 중첩을 피할 수 있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자기를 개발하여 특장을 하나쯤 갖추는 것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이 작가도 개성이 다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서예가도 보면 오체 중에 잘 쓰는 서체가 있어서 ‘누구’하면, ‘아, 그 사람 초서가 일품이지.’하고 떠올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느 작가는 서정 수필에 능하고, 또 어느 사람은 논리성이 있는 칼럼류의 글을 잘 쓴다. 이렇듯 자기가 잘하는 것을 특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어떤 전문가가 아니라 소양면에서 남다른 것을 보다 깊게 신장시켜야 한다.
우리는 고전에 해박한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그 사람의 특화된 모습을 발견한다. 분재나 수석, 난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글 속에서 함께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신뢰를 하게 되고 글의 품위를 존중하게 된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길러지거나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부단한 노력으로 특장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흔히 잡화점식 소재를 망라하여 써놓은 작품집을 대할 때가 있다. 이는 얼핏 보면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한 것으로도 보이기도 하지만 깊이가 없음을 금방 알아낸다. 피상적으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써진 글임을 금방 눈치를 채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나 전문은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그에 따른 전문용어, 고유한 명칭이 있음을 본다. 가령 수석에서 같은 경석류라도 원산형과 섬형, 토파석이 있으며, 폭포석만 해도 직하폭포, 계류형, 빙폭과 은폭들로 다양하다.
이런 것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고 만다면 어찌 독자에게 생생히 느낌과 정감을 전달할 것인가. 이렇듯 수필은 피상적인 글쓰기가 아님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