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독보적 영역…이상범 디카시집 '보리수의 영가'

대한민국예술원 이근배 회장 해설

by 해드림 hd books

흰 바탕을 가득 채운 만상(萬象)의 오브제

-이근배(시인·대한민국예술원 회장)


1

붓을 들고 보니 먼저 ‘회사후소(繪事後素)’란 말이 떠오른다. 그림을 그리려면 먼저 흰 종이, 비단, 캔버스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 풀이는 깊은 경륜과 높은 학력, 성품의 고매함을 갖춘 사람이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글쓰기에 있어서도 깊이 새길 일이다.

내가 처음 이상범을 만난 것은 거의 예순 해 전 그러니까 1963년이었다. 육군 소위의 앳된 계급장을 가슴에 붙인 군복 차림의 그는 「시조문학」에 시조 추천을 받을 무렵인데 동두천인가에서 주말 휴가를 나와서 종로 금하다방에서 이태극 선생을 뵈옵는 자리에서였다.

그해 한국문인협회 회보 창간호에 실린 명단에 시조시인이 14명이었을 만큼 한 사람의 신인도 반가웠었다. 재능도 열정도 남달랐던 장교 시인은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일식권>이 당선되면서 1960년대의 별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마치 어떤 절대자로부터 소명을 받고 태어났다는 듯이 그는 현대시조를 한 단계씩 높이는 데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서 달려온 것이다.

시신(詩神)에 홀린 듯 등단 마흔 해를 조금 넘어 스물다섯 권 시조집을 잇달아 펴내더니 2007년 처음 디카시집 『꽃에게 바치다』를 펴내면서 이 나라 시조 1천 년 역사에 시조와 손수 찍은 사진을 짝지은 오래된 미래인 시조의 첨단화에 더욱 창작혼을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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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증(未曾)의 독창적 개발품이기도 한 ‘이상범 디카시집’부터 해부해 보자. 이미 자유시, 시조 어느 쪽에서도 그림을 곁들인 시집들은 많이 있었지만, 꽃이거나 어떤 사물을 오브제로 찾아내어 이미지를 렌즈로 포착하고 그 내포성(connotation)을 무한대로 확대하여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이상범이 창시자라 하겠다.

어느 시 전문지가 스물다섯 글자 이내로 ‘시란 무엇인가’를 물어왔을 때 나는 ‘사람의 생각이 우주의 자장을 뚫고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것’이라고 얼버무린 일이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당신은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조각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조각이라니요. 나는 돌 속에 들어있는 것을 꺼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가령 이상범에게 ‘당신은 왜 디카로 사진을 찍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는 ‘모래알 하나에도 우주가 들어있다고 하지 않느냐. 몇 광년 밖의 별을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 디지털카메라의 눈으로 순간을 잡아낸 사물을 컴퓨터 안에서 극대화시켜 보노라면 그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말이 풀려나오고 있어요.’라고 하지 않을까.

디카시를 보자


불티만 한 꽃과 이슬

눈망울이 수천 개다

실비가 끝날 무렵

해가 뜨니 발광(發光)이다

악 소리 지를까 말까

빛이 서로 분사한다

_‘입 안개 꽃 이슬’ 전문


제목부터가 네 개의 명사로 구성되어 있다. 입은 화자의 말이고 안개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며 꽃은 형상을 갖춘 오브제, 이슬은 대상물의 부수적 산물이다. 이것은 풀숲이거나 꽃밭이거나 너무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관계 설정이다. 소월은 <산유화>에서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로 꽃과 화자와의 공간과 시간의 거리를 둠으로써 그 존재 의미를 확대 생산하고 있는데 이상범은 초미세 접근으로 마치 우주 속의 혹성이 폭발하듯이 정물이 멈춰있지 않고 발광체로 빛을 분산시키는 스펙트럼을 눈이 아닌 내면의 감성으로 현상하는 것이다.


2

아주 오랫동안 우리의 모국어는 뜻과 소리가 하나 되어 하늘에 떠돌다가 비바람에 휩쓸리다가 산과 바다를 헤매다가 이 나라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 입과 입으로 옮아 다니다가 마침내 틀을 갖춘 시가 태어났으니 곧 시조다.

초, 중, 종 삼장의 단수가 원형인 시조는 ‘현대’라는 모자를 쓰면서 자유시와의 다툼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였던가. 다양성과 복잡성 시대성을 수용한다는 까닭으로 연시조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몇 해 들어서서 자유시에서도 이른바 극시(極詩)라는 이름으로 짧은 시 쓰기가 일어나고 시조도 단수 짓기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상범의 디카시가 예측불허의 첨단과학 기술에 얹혀 시조(시)의 미래를 열어가는데 하나의 시도이자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흙 반죽의 인물 묘사

꾸덕꾸덕 반 건조 속

칼질하면 뜨는 면상

이제는 초벌구이로

개성 입힌 자화상

_‘자화상’ 전문


올해는 현대 조각의 제1세대이자 천재 조각가인 권진규 탄생 아흔아홉 해를 맞는다. 현해탄을 넘나들며 테라코타와 건칠(乾漆)로 얼굴과 흉상을 구워내던 그는 동선동 언덕에 9평 집을 짓고 고독한 작업을 하다가 쉰한 살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전설 속으로 돌아갔다.

이 <자화상>은 권진규 조각가의 흉상을 모티브로 한 듯, 피가 돌지 않는 초벌구이의 흙덩이에 오히려 영원히 살아남는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서정주는 스물두 살 때 <자화상>을 썼고 윤동주도 그 나이 때쯤 <자화상>을 썼는데 이상범은 여든을 훌쩍 넘어 한 덩이 마른 흙덩이를 우리 앞에 들이밀고 있다.


마음 가라 앉히고

훨씬 낮은 음성으로

그래 한 발 물러서서

마주 한 채 귀를 열면

비로소 잘잘못 드러내고

용서하면 대화는 끝

_‘대화’ 전문


산다는 것은 대화의 연속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해, 달, 별, 구름, 산, 바다, 꽃, 나무, 새와 물고기, 가축과 짐승들, 저희끼리도 서로 말을 건네고 사람과도 말을 주고받는다. 시가 어디서 오는가. 사물이 걸어오는 말을 새겨듣고 그 뜻을 옮기는 일이다.

석굴암대불의 귀가 왜 큰 것인가. 동해 일출을 바라보며 바다 밖의 소리들, 물짐승 산짐승의 것들, 바위며 흘러가는 바람이며 구름의 말까지도 모두 알아듣는 귀를 가졌기 때문이리라. 진정한 대화는 나의 말보다는 남의 말을 깊이 새겨듣는 데서 나의 말도 살아나는 것이다.

3

앞글로 돌아가 보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흰 바탕이 먼저 있어야 한다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흰 바탕일까. 북송 때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당(唐)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의 시와 그림을 가리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詩中有畵 畵中有詩’라 했고 조선 세종 때 시인 성간(成侃)은 ‘시는 소리 내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내지 않는 시 詩爲有聲畵 畵乃無聲詩’라 일렀다.

이 사화집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시와 그림(사진)을 대비시켜 시각과 청각의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한다.


이슬방울 크기만 한

칩 속의 바탕화면

저장해 두었다가

핸드폰으로 볼 수 있는

그러한 시대가 지금 왔다

마음대로 끌어 쓰는….

_‘이슬 속 바탕화면’ 전문


하룻밤이 잉태하여 꽃잎 나뭇잎 위에 무수히 산란해 놓은 티 없이 맑고 투명한 이슬방울, 그것은 하늘과 땅이 결합하여 낳은 대자연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아침 한때 햇빛을 받아 찰나의 보석이 되다가 오간 데 없이 소멸하고 마는 그 절정의 순간을 핸드폰의 눈 속에 담아내어 영원으로 잇고 있다.

이슬의 바탕화면은 무슨 빛깔일까. 분명한 것은 흰빛이 아닌 우주만물의 모든 빛깔이 정지되어 있지 않고 끝없이 너울 치면서 이슬 속에다 투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시대가 지금 왔다 / 마음대로 끌어 쓰는……’ 이 종장에서 지나간 시대의 어떤 천재적 신필(神筆)들의 붓끝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오묘 불가사의한 빛과 소리를 스마트폰이라는 기계가 잡아내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상범의 바탕색은 무엇일까? 저, 항일기에 태어나서 열 살 때 광복을 맞았으니 학교에서 가타카나타라는 남의 나라 문자를 먼저 익혔을 것이고 어려서부터 모국어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글쓰기로 이어져 청소년기에 이미 책 읽기와 글쓰기에 첫발을 내딛고 있었을 것이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면서 나라, 겨레에 대한 뼈저린 생각들이 더욱 안으로 끓어올랐으리라.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인 스물세 살 때 손수 등사한 시집을 꾸며냈고 군문에 입대 1961년 소위로 임관되면서 휴전선 가까운 전방에서 분단 조국의 시상들로 틈틈이 시조를 써서 60년대 현대시조 중흥의 대열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었다.

그로부터 60 성상을 헤아리게 되고 세수도 구순을 앞에 두고 있는 원로가 아닌가. ‘아웃사이더’를 쓴 코린 윌슨은 ‘나이가 들어야 인생을 안다고 해서 나이를 먹었더니 젊은 날의 감성과 예지는 다 사라진 뒤였다.’라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상범은 스무 살쩍보다 더 날 선 감성과 예지의 촉각을 세워 ‘디카시’의 창시자로 광대무변한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돌밭 뙤약볕 아래

누비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돌은 돌 한두 개

누구인가 얻고 끝냈다

평원석 하나를 그리던 중

먼 평화가 내게 왔다

_‘평원석, 그리고 평화’ 전문


1970년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박두진 선생을 비롯해 많은 문인이 주말이면 남한강 돌밭을 찾았었다. 박두진 선생은 그런 탐석(探石)에서 시상을 뽑아내어 「현대문학」에 <수석열전(水石列傳)> 연작시를 쓰셨다. ‘나는 이 돌들에게서 사상도 얻고 시도 얻었다네’ 어느 날 손수 수집하신 수석들 앞에서 내게 주신 말씀이다.

송나라 미불(米芾)은 자연석 벼루를 하나 얻고서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해서 ‘벼루에 미치고 먹에 바보 되는’ 연벽묵치(硯癖墨癡)의 첫 손에 꼽힌다. 추사(秋史)를 비롯해 옛 큰선비들은 시, 서, 화 삼절(三絶)의 아취(雅趣)를 높이 기렸는데 이상범도 오늘의 글동네에서도 삼절의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평원석 하나를 그리던 중 / 먼 평화가 내게 왔다’라는 곧 이상범의 시의 먼 평원이 내다보이고 그의 정신세계가 만상(萬象)과 어우러져 내 나라의 모국어가 꽃피고, 새 울고 바람 불고 눈 내리는 또 하나의 평화 세계를 구현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더욱 사봉필해(詞峰筆海) 천록영창(天祿永昌) 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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