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시집, 나를 깨우는 소리

by 해드림 hd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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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철저히 주연이 된 시들


백발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 때 시를 쓰면 커다란 힘이 된다.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 해매와 같은 사기(邪氣)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고단할수록 시 한 편을 써놓았을 때 다가오는 위로와 평화는 크고 의미롭다. 이수연 시들은 대부분 고요하고 평화롭다. 물론 해탈의 경지에서 그려내는 심상이 아니니 삶의 애환이 부윰하게 깃들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심상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작품이다.

보이는 대로, 들어오는 대로, 사물 너머 궁금한 대로 자아를 투영하여 놓았다. 따라서 이수연 시들에서는 시의 메타포가 전혀 불필요함을 말해주기도 한다. 메타포를 위해 억지 부리는 시들이 없다는 의미이다.


…기도에는 메타포가 없어도 하늘까지 닿는다


영혼이 고단하고 힘들 때, 또는 반대로 그 너머 평화를 누릴 때면 시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기도에는 메타포가 없어도 하늘까지 닿는다. 고요와 간정(懇情)과 평화, 때로는 신령한 눈물과 기쁨이 기도에는 있을 뿐이다.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기도는 호흡이다. 호흡은 필요할 때만 하는 게 아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절대자의 호흡에다 자신의 호흡을 두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호흡하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수연 시인은 기도하듯 시를 쓰는 것으로 봐서, 한바탕 휘몰아친 회리바람을 벗어난 그 평화의 영역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듯하다.


시인은 ‘아름다운 것들’을 다음과 같이 담아냈다.

가슴에 담을 것을 주섬주섬/무엇이 나를 뜨겁게 할까//풀잎에 이슬방울/또르르 구르면/먼지 씻긴 공기는/새 옷을 입는다//새가 공중을 휘돌며 곡예를 한다/어미 새가 물어다 준 사랑을/새끼는 뜨겁게 삼킨다//캥거루 주머니에서 분리된 자식은/다시 어미가 되어 사랑을 내린다//사랑이 구르면 세상이 둥글다

이처럼 시인의 자신의 꽃바구니에다 이슬방울처럼 맑고 깨끗한 것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저 주어 담을 뿐이다. 시인의 바구니를 들여다보는 독자는 그 안에서 생명 같은 평화를 즐기면 된다.


그럼에도 시인은 말한다


여린 어둠이 분산되어 갈라진다. 아파트 불빛은 듬성드뭇하고 인기척 없는 대로변은 신호등만 깜박이고, 아직 일터로 가기엔 이른 시간이다.

시선이 모아진 하루는 커피 한 잔에 기운이 들썩하고, 컴퓨터 앞에서 심장의 소리가 커진다. 책상 위에 걸린 달 그림이 내 염원을 듣고 있다. 초침 소리가 찰칵거릴 때마다 한 소절씩 꺼내지는 판타지 언어들이 꿈처럼 등장한다. 문학의 이해를 고민하는 내게 바흐친이 제시한 카니발은 신선하다. 몰입의 밀도가 견고해지면서 어둠을 소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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