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월 1일
혹시나, 하고 지내온 지난 1년을 살아온 게 기적 같기만 하다. 올해는 또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 정초 아침거리가 없다고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돈을 구해본다고 나가더니 밤늦게 돈 500원을 내 손에 슬쩍 쥐어준다. 나는 잠시 괴로웠다. 이 돈은 누구에게 사정해서 꿔온 돈일까, 하는 생각으로 눈물겨웠다. 허나 사노라면 갚아지겠지. 하루종일 다섯 식구가 한방에 앉아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지냈다.
1963년 1월 2일
아침에 눈 뜨고 몇 시인가 보려 했더니 시계가 없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쌀값을 구할 수 없어 시계를 전당포에 잡혔다고 한다. 기분이 우울했다.
묵은 때를 씻어버리려고 눈이 하얗게 덮인 아리랑 고개를 넘어 돈암동 목욕탕엘 갔더니 사람이 초만원이다. 부지런히 목욕하고, 오늘은 언니와 인숙이네 이사 간 집 간다고 약속했기에 언니네로 갔더니 벌써 혼자 갔다고 하여 섭섭했다. 나 혼자라도 가보려고 인숙이네 전화번호를 알아보려 덕자에게 전화했더니 잘 못 걸려 충무로 가게에 있는 형부가 받는다. 승애네로 건다는 게 잘 못 걸렸다고 말하자 형부는 “전화 한 통에 3원이요, 3원.” 해서 기분이 나빴다. 너무 무안해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전화요금 6원을 갚을 것을 다짐했다.
오늘의 청소년에게 그 시절의 대중탕을 보여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명절이 다가오면 내남없이 묵은 때를 벗기려고 모두들 목욕탕엘 갔다. 가정집에서 목욕하기 힘든 때였으니 당연히 초만원이다. 때론 탕 속으로 입수하기조차 힘들었다. 물 위엔 때가 둥둥 떠올랐다. 목욕탕 주인은 가끔씩 탕 안으로 들어와 뜰채를 가지고 때를 건져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봤던 보건 과목 시험 문제가 생각난다. 이런 문항이 있었다. ‘목욕탕엔 며칠 만에 가야 하나?’ 사지선다형 답안지엔 ‘일주일, 이주일, 한 달, 두 달’이 있었는데 일주일이 정답인 걸 모르고 나는 한 달이라는 번호에 동그라미를 해서 틀렸다. 딱 그 문제 하나만 틀려 95점을 받았다. 나는 엄마랑 한 달에 한 번 정도나(때론 그 이상이 되기도) 목욕탕에 갔기에 그렇게 답한 거라 억울하기만 했다. 지금 기준으론 일주일이라는 정답도 오답이 아닌가.
충무로 우리 동네엔 중국인이 하는 목욕탕이 있어서 우리는 중국목욕탕이라고 불렀다. 목욕탕에 한 번 가려면 엄마는 삼 남매 모두를 데리고 가 동생은 대야에 앉혀 놓고 그 뜨거운 물속으로 언니와 나를 들여보낸 뒤 때가 불어나길 기다렸다가 등짝이 벗겨지도록 때를 박박 밀어주었다. 살 껍질이 벗겨질 듯 아파 몸이라도 비틀거리면 가만히 좀 있으라며 불같은 손으로 찰싹 등을 때렸다. 엄마는 얼른 새끼들을 씻겨놓고 자신도 한거풀을 벗겨내야 했기에 마음은 급하고 목에 침도 마르고 애만 타던 중이라 어린 것들의 고충 따윈 염두에도 없었다. 수증기로 인해 젖빛 유리처럼 부옇기만 한 욕탕 옆 남탕에선 갈 때마다 “으으~~ 어어~~”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탕과 남탕을 나누는 벽은 천정까지 완전히 막혀 있지 않고 약간의 틈이 있어 나는 그 소리를 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러는지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해서 물기 젖은 타일 벽을 이따금씩 바라보았다. 저 벽 위를 올라갈 수만 있으면 소리의 주인공을 단박에 알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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