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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나였으면 어땠을까', 공로연수 100일 이야기

by 해드림 hd books

41년 공무원생활을 정리하는 공로연수 100일 이야기,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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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10개월 15일, 긴 시간을 한 호흡으로 달려온 느낌이다.

그 길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감정들. 아쉬움 가득한 삶의 흔적을 살펴보며 시간과 용기 부족으로 시작해 보지 못한 문 앞에 서 있다.

퇴직하면 건강관리 하며 즐기며 살겠다는 마음가짐은 우연히 선택한 ‘전직 지원’ 교육을 통해 ‘일’의 가치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출발점이 되었다.

지혜를 쌓으며 ‘일’의 의미를 생각해보니 지나온 41년은 생활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일자리’였다면, 이제는 건강한 삶을 위해 ‘일거리’를 갖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공직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입었던 훈장 달린 옷은 옷걸이에 걸어두고 나왔다는 마음가짐이 순간순간 찾아드는 미숙한 감정으로 비움의 경계를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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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일, 흔들리는 감정을 내 삶의 전부인 가족, 형제를 비롯한 친구, 동료, 새로운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더하며 이겨냈다.

그리고 안개 자욱한 미로 속 많은 문 앞에서 서성이던 지난날의 기억을 떨쳐내고, 이제는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나가 시작해 보고 즐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나온 삶과 은퇴를 준비하며 새롭게 맞이할 미래의 삶 속에서도, ‘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번뇌의 순간은 끊임없이 찾아올 것이다.

이제는 ‘일’의 의미를 ‘건강’에 두고 싶다.

언제나 소녀처럼 꽃길을 좋아하는 김효은 여사와 두 아들 주원, 주환 그리고 딸 성림이, 내년이면 세상에 태어날 뽐뽐이를 위해 ‘일’을 만나야겠다.

가을 햇살 내려앉은 텃밭 정원에 심은 배추와 떨감나무 붉은색 감에는 햇빛과 별빛 머금은 달달함으로 차오르는 속을 채워간다.

곱게 물들어 떨어지는 낙엽처럼, 시간과 계절의 흐름에 몸을 내어주는 바람처럼 덕산제 처마에 걸쳐진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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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버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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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앞둔 아버지가 책을 내신다며 글을 부탁했을 때 군대에 막 입대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훈련소에서 아버지의 편지에 답장하던 기억을 되살리며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존경과 사랑, 감사의 마음을 이 기회를 빌려 전하고 싶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가족의 사랑을 그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는 분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아버지와 TV를 보며 꾸벅꾸벅 졸았던 일상들과 저와 동생의 손을 잡고 다니시며 콧바람 넣어주었던 시간들 하나하나가 모두 아버지의 헌신과 사랑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주말이면 투정부리며 함께 했던 집안 청소며 수족관 물고기 기르는 요령을 알려주시던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또렷해집니다.

아버지의 정년퇴임을 온 가족이 감사의 마음으로 맞이하며, 열심히 살아오신 당신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서툰 시 한 편에 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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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들고 지나가버린 바람

날 두고 저만치 흘러버린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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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릴 수 없는 시절과

되돌리고 싶은 그 순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닳아버린 몽당연필 같은

나를 네가 꼬옥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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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것에 대한 후회는

지나간 강물에 흘려보내고

다가오는 바람을 너와 함께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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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묵묵히 걸어오셨던 그 길에 이제는 저희가 함께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시는 길이 아름답고 평화롭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형제는 당신의 가르침과 희생을 자양분으로 성장했기에 인생의 갈림길과 삶의 파도를 잘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이제 저희 걱정은 내려놓으시고,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즐기는 삶이 풍요롭고 행복하기만을 소망합니다.

자주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우리 곁에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하셔서 행복합니다. 항상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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