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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립 시집 ' 꿈꾸는 언덕 위에 작은 집 하나'

곽경립 시집 ' 꿈꾸는 언덕 위에 작은 집 하나' 제주문화예술재단 선정

by 해드림 hd books

세속을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만이

그려낼 수 있는 듯한 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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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자연 현장에서 때로는 소요하고, 때로는 먼산바라기하고, 때로는 침묵하며 마음을 모아 쓴 서경시들로, 시로 그리는 수채화들이다. 시인이 자연의 호흡 따라 그려내는 서경을 보며, 시인의 마음과 정신을 따라 느끼고 감상하고 사유하면서 그리워하면 되는 시들이랄까.

시야의 막힘이 없는 하늘, 산, 들, 바다 그리고 자연의 소리들을 눈앞에 두고 이를 시로 그려가는 시인이 부럽다. 세속을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만이 그려낼 수 있는 듯한 시들이고, 그래서 도시를 떠나 살고픈 사람들을 안달하게 하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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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루가 기울어가는/꿈꾸는 언덕에는/먼바다 파도 소리가/노래를 부르는 것처럼/노을 물든 나뭇잎들이/서로 얼굴을 비벼대며/소곤거리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잎은 떨어지고/빈 산에 하얀 눈이 쌓이면/새소리 끊어진 푸른 솔 사이로/덧없이 흘러간 이야기들이/바람결에 언뜻언뜻 스쳐 가겠지요./우리 삶이 그러하듯이.//행여 먼 훗날/누군가 꿈꾸는 언덕을 기웃거릴 때/꽃들에 취해 길을 잃지는 않을까,/매듭을 하나하나 걸어두고 싶었습니다./나의 인생이 어둠에 묻히기 전에….

-누군가 꿈꾸는 언덕을 기웃거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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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이번 시집 [꿈꾸는 언덕 위에 작은 집 하나]의 펴내는 글이다. 하지만 이 펴내는 글은, 곽경립의 모든 시를 함축하는 대표 시와 같다.

곽경립 시인의 시들은 마치 아련한 연시(戀詩)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소재가 자연이든 인생이든 마찬가지다. 그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지극히 고요하고 애틋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눈으로, 가슴으로 들어오는 자연과 인생을 한땀 한땀 새겨 읽을 줄 안다. 때론 깊은 연민조차 드러낸다. 연민도 결국 사랑이다. 다만 연민이 깃들어 있어 시구 하나 하나 여운이 길다.

모든 사물을 사랑하고 감싸는 마음, 그 초월성이 없으면 어설픈 표현의 배설이 되겠지만, 이미 곽경립 시인은 ‘꿈꾸는 언덕’처럼 오랫동안 끈끈한 정을 쌓아 왔다. 위에서 언급한 펴내는 글처럼 시인은 꿈꾸는 언덕, 먼바다의 파도, 노을과 낙엽, 새들과 숲, 바람과 삶 그리고 인생 등을 불러들여 시의 생명인 아름답고 잔잔한 서정을 불어넣었다. 따라서 곽경립 시인의 시들은 굳이 메타포가 시의 충분조건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미 시인에게 자연과 삶의 관조는 생의 호흡이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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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사계를 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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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제주도에서 거주하며 제주 시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시집 [석양은 산마루에 머뭇거리고]도 마찬가지고 이번 시집 [꿈꾸는 언덕 위에 작은 집 하나]에서도 제주의 사계를 충만하게 감상할 수 있다. 시인이 제주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섬세하게 시로 담을 수 있는 것은, 파도끼리 부딪쳐 튀어 오르는 포말 하나에도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가슴은 제주의 풍정과 늘 물아일체로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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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숲으로 짙게 배어든/풀벌레 구슬피 울어대는 밤/달빛이여 가파른 길 달려가는/내 마음의 어둠을 밝혀나 주오/쓰라린 가슴 부질없는 괴로움/갈가리 찢어지는 이내 설움을/은하수 흐르는 물 흠뻑 적시어/가슴에 남은 시름 씻어나 주오

-서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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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말하는 ‘쓰라린 가슴 부질없는 괴로움/갈가리 찢어지는 이내 설움, 가슴에 남은 시름’은 삶의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삶의 고단함이 없어도 그것이 파도이든, 밤이든, 풀벌레든, 달빛이든 그 어디에서든 인생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자연에서도 그대로 느낀다. 더구나 시인처럼 제주의 사물과 물아일체 된 일상이라면, 그 충격의 강도는 더욱 크다. 물론 인생에서 느끼는 희로애락과 바다에서, 산에서 혹은 바람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은 서로 차원이 다르지만, 곽경립 시인은 그 자연의 고뇌와 번민을 통해 자신을 깊이 성찰함으로써 편안하고 쉽고 서정적인 작품들을 그려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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