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무신론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믿게 된 이유는 상당 부분 기독교 교직자들의 잘못된 성경 해석과 설교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지옥불 교리가 그 요인 중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교직자들이 설교하는 바와 같이 죽은 불신자들을 모두 지옥이라는 영원한 고초의 장소에 보낼까?
이제부터 이 문제를 주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고 있는 바로 그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시겠습니다.
먼저 구약 성경 욥기 3장입니다.
1. 드디어 욥은 침묵을 깨뜨리고 입을 열어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2. 이렇게 외쳤다.
3. “내가 태어난 날이여, 저주를 받아라. 내가 임신이 되던 그 밤도 저주를 받아라.
4. 그날이여, 영원히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하나님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려라. 빛이여, 다시는 그 위에 비치지 말아다오.
5. 흑암아, 사망의 그늘아, 그날을 너의 것이라고 주장하여라. 구름아, 그 위를 덮어 빛이 비치지 않게 하여라.
6. 그 밤이여, 짙은 어두움에 휩싸여 버리고 달력에서도 삭제되어 그해의 달과 일수에 계산되지 말아라.
7. 차라리 그 밤이 적적하고 기쁨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하였다.
8. 날을 저주하는 데 익숙한 자들아, 그 밤을 저주하여라.
9. 그날 밤은 새벽 별도 빛을 내지 말고 기다리던 빛도 나타나지 말며 아침 동녘도 보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10. 나를 태어나게 하여 이처럼 큰 슬픔을 당하게 한 그 날을 저주하고 싶구나!
11.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 차라리 죽었더라면 좋았을 걸!
12. 어째서 어머니가 나를 무릎에 받아 젖을 빨게 하였는가?
13. 내가 그때 죽었더라면 지금쯤은 평안히 잠들어 쉬고 있을 텐데.
14. 그것도 으리으리한
15. 궁전을 짓고 살던 고대 왕들과 고관들, 그리고 금은보화로 집을 채운 황태자들과 함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16. 내가 그때 죽었더라면 죽어서 나와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아이처럼 땅속에 묻혀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17. 그곳은 악한 자들이 말썽을 부리지 못하고 피곤한 자들이 쉴 수 있는 곳,
18. 죄수들까지도 평안을 누리고 포학한 간수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곳,
19. 그곳은 높고 낮은 자의 차별이 없고 종이 주인에게서 해방되는 곳이다.
20. “어째서 고난당한 자에게 빛을 주고, 마음이 괴로운 자에게 생명을 주었는가?
21. 이런 자들은 죽기를 기다리고 감추인 보화를 찾는 것보다 더 간절히 죽음을 찾아도 그것이 오지 않는구나!
22. 이들은 죽어서 땅 속에 묻혀야만 행복한 사람들이 아닌가?
[현대인의 성경]
이 글, 어떤 무신론자 혹은 허무주의자의 생각을 옮긴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내용은 그 옛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의인이라 부르신 욥이란 사람의 말로서, 구약 성경 욥기를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종교인에겐 너무나 생소한 말일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은 인간의 사후에 대하여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어떤 선입견도 갖지 말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성경 인용문에 부연 설명을 자제하려고 합니다)
그곳은 악한 자들이 말썽을 부리지 못하고 피곤한 자들이 쉴 수 있는 곳,
죄수들까지도 평안을 누리고 포학한 간수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곳,
그곳은 높고 낮은 자의 차별이 없고 종이 주인에게서 해방되는 곳이다.
어째서 고난당한 자에게 빛을 주고, 마음이 괴로운 자에게 생명을 주었는가?
이런 자들은 죽기를 기다리고 감추인 보화를 찾는 것보다 더 간절히 죽음을 찾아도 그것이 오지 않는구나!
이들은 죽어서 땅속에 묻혀야만 행복한 사람들이 아닌가?
[욥기 3:17~22]
그랬더라면 내가 생기지 않은 것과 같이 되어
아래 내용도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성경 욥기 10장입니다.
1. “나는 삶에 지쳐 버렸다. 마음껏 불평도 해보고 내 영혼의 괴로움 을 털어놓아야겠다.
2. 내가 하나님께 말하리라. ‘하나님이시여, 나를 죄인으로 단정하지 마시고 무엇 때문에 나를 죄인 취급하시는지 말씀해 주소서.
3. 주의 손으로 직접 만드신 나는 학대하시고 멸시하시면서 악인의 책략을 너그럽게 보시는 것이 옳은 일이십니까?
4. 주께서는 육신의 눈을 가지셨습니까? 어째서 사람이 보듯이 보십니까?
5. 주의 날이 인생의 날처럼 짧습니까?
6. 무엇 때문에 주께서는 내 허물을 찾고 내 죄를 꼬치꼬치 밝혀내시려고 하십니까?
7. 주는 나에게 죄가 없는 것도 아시고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어 만드시고 이제는 오히려 나를 없애 버릴 작정이십니까?
9. 주여, 나를 흙으로 만드신 것을 기억하소서. 주께서는 나를 다시 티끌로 돌려보내시려고 하십니까?
10. 주는 나를 우유처럼 쏟아 부으시고 치즈처럼 굳게 하셨습니다.
11. 그러고서 나를 살과 가죽으로 입히시고 뼈와 힘줄로 얽어매셨으며
12.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사랑을 베푸셔서 주의 보살핌으로 내 영을 지키셨습니다.
13. “그러나 나는 주께서 나를 지켜보시다가 만일 내가 범죄하면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여 용서하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14. (13절과 같음)
15. 내가 만일 악하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이지만 죄가 없다고 해도 내가 머리를 들 수 없는 것은 내가 수치감에 빠져 내 고통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16. 내가 머리를 치켜들면 주께서는 사자처럼 나를 덮쳐 무서운 위력을 다시 나타내십니다.
17. 주께서 증인을 번갈아 세워 나를 괴롭게 하시며 나에게 대한 분노를 점점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 나를 치는 것 같습니다.
18. “그런데 주께서는 무엇 때문에 나를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내가 차라리 아무도 보기 전에 죽었으면 좋을 뻔하였습니다.
19. 그랬더라면 내가 생기지 않은 것과 같이 되어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
이 내용도 구약성경에서 동방의 의인으로 소개된 욥의 내세관을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그 내용 중 핵심은 욥기 10장 18, 19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무엇 때문에 나를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내가 차라리 아무도 보기 전에 죽었으면 좋을 뻔하였습니다. 그랬더라면 내가 생기지 않은 것과 같이 되어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말속에는 사후 욥이 천국이라는 극락의 세계에 갈 것이란 어떤 암시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의미의 핵심은 말 그대로 생기기 전의 상태 곧 없어지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말도 마치 오늘날 어떤 허무주의자가 한 말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말 역시 기독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는 성경이 설명하는 우리 인간의 사후 세계입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 좋은(?) 사람은 여기까지만 읽고 ‘내가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았나?’ 하고는 더 이상 이 성경 말씀조차 보지 않으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상 인용한 내용은 절대로 필자의 생각을 적은 건 아닙니다.
이뿐만 아니라 어떤 무신론자의 말을 따온 것도 아닌, 성경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직접 성경을 찾아 다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꼭 그렇게 해 주십시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다시 구약 성경 욥기 14장입니다.
어떤 편견도 갖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2.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
물지 아니하거늘
3.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을 들어 살피시나이까? 나를 주의 앞으로 이끌어서 심문하시나이까?
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5. 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6.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로 쉬게 하사 품군 같이 그 날을 마치게 하옵소서
7.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찌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찌라도
9.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10.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
11. 물이 바다에서 줄어지고 하수가 잦아서 마름 같이
12.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13. 주는 나를 스올(개역한글 :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 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4.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
15. 주께서는 나를 부르셨겠고 나는 대답하였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아껴 보셨겠나이다
16.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살피지 아니하시나이까
17.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18. 무너지는 산은 정녕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19.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 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소망을 끊으시나이다
[욥기 14장 개역 개정]
이 성경 말씀 중 특히 스올이란 곳에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곳도 앞 욥기 3장의 내용과 같은 의미로 읽히지 않습니까? 이곳은 욥이란 사람이 당시 당하고 있던 극심한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장소로 (하나님이 재차 부르실 때까지 잠시 숨을 수 있는 곳으로), 결코 극심한 고초의 장소로 읽히지는 않습니다.
이런 내용이 성경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저 역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바로 드는 의문은, ‘왜 그 많은 신학자와 교직자들은 이런 내용을 모를까?’
그리고 혹 내가 잘못 이해를 한 게 아닐까 수십 번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 후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내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출판사 견해와 무관합니다.]
이 글의 출처 [당신의 하나님은 안녕하십니까] 황보태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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