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신림면 치악고시원, 30년 전 인연의 해후

by 해드림 hd books

30여 년 전, 강원도 치악산 기슭의 한 집에서 2~3년 동안 함께 지내던 지인들을 만나러 원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30여 년 전이면 긴 세월인데 다들 어떤 모습일까.

옛날을 회상하며 원주에서 시내버스를 타보려고 하였지만 버스 찾기가 어려웠다. 그제야 당시 우리가 있던 고시원 앞으로 하루 두 번인가 세 번인가만 버스가 지나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버스에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나는 종종 악몽을 꿨다.

사법시험 날짜가 발표되었는데 시험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전역을 하였는데 다시 군입대를 해야 하는 꿈처럼 황망한 꿈이었다.

아마 사법시험 실패라는 상처보다, 사법시험 준비하던 10여 년 동안 말없이 됫바라지 해주었던 형에게 미안한 마음이 악몽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더구나 형이 병을 얻어 4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 사법시험은 내게 질긴 트라우마를 안겼다.

우리가 공부하였던 곳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이라는 마을, 상원사로 올라가는 치악산 뒤편 치악고시원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고시원 마을을 지나 좀 더 깊숙이 올라가 상원산장이라는 펜션에서 30여 년 전의 지인들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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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공부하였던 그 마을에서 지인들을 만나 회포를 풀면 이제 악몽은 안 꾸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을 들머리에서 문득 스쳤다.

고시원이 있던 마을을 들어서고서야 3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절감할 수 있었다. 집이라곤 두서너 채 있던 그곳에서 고시원이 있던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서들 그리 몰려와 둥지를 틀었을까.

하지만 적어도 서로 바라보는 눈빛에는 지인들의 30년 세월은 잠잠하였다. 실개천이 고요히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서로 그리워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때 정신적 육체적 질곡을 공유한 시간들이 맺어준 인연이어서, 산장 계곡의 햇살 스민 물빛처럼 영혼이 환해지도록 반가웠다. 함께 밥을 먹고 매일 얼굴을 마주해도 수험생활은 그 자체가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매 순간 휘청거릴 만큼 외로움의 추돌을 당하며, 한 번씩 슬럼프가 찾아오면 책을 붙들지 못한 채 발버둥 쳐댔던 시간 들, 고시원 비용 등 가족의 도움을 받거나 스스로 수험생활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환경…, 서로 말은 없어도 다들 비슷한 처지에서 한 시절 험한 나날을 겪어냈었다.


당시 30대였던 열 서너 사람이 함께 생활하였지만 연락이 닿은 일곱 사람이었다. 항상 해맑은 연우 씨가 깊은 숲속에서 먼저 나를 반겼다. 이어서 모임을 주선한 선비 같은 몽재 형, 당시 든든한 맏형이었던 재구 형이 도착했고, 조금 늦게 막내 격이라 아직 현직인 정태 씨가 들어왔다.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한 용규 씨는 아쉬움을 남겼고, 예나 지금이나 달리기를 즐기는 재관 형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오기로 하였다.

깊은 숲을 고요하게 울리는 물소리가 등뒤로 깔린 가운데, 산장 농막에 둘러앉은 우리는 밤늦도록 30여 년 전 있었던 이야기며 세상사를 나누었다. 오래 전 작고하셨지만 늘 인자한 인품으로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려주시던 고시원 주인아주머니도 떠올랐다. 허리가 굽어 쉬엄쉬엄 걸어야 하는 몸으로도, 버스를 타고 시내 시장까지 다니며 우리 건강을 챙겨주셨던 분이다. 한겨울이면 방마다 설치한 연탄난로 위에서 폴폴 풍기던 칡 향기도 어디선가 스며드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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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60대를 살아가지만, 30대 당시의 인품과 성격은 그대로여서 30년이라는 격세는 느낄 수가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재구 형과 정태 씨는 산중의 어둠을 헤치며 귀가를 하고, 몽재 형과 나와 연우 씨는 한방에서 잠을 청했다. 솔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밤새 이어지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눈을 감았으면 좋았을 텐데, 깊이 오른 취기로 눕자마자 숲을 쩌렁쩌렁 울리며 코를 곯았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도착한 재관 형과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숲길을 따라 도란도란 산책을 나섰다. 오후에는 상원사 오르는 길로 가보기로 하였다. 치악고시원에서 공부하던 당시, 지친 심신을 위해서 또는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종종 치악산 상원사를 찾았던 터라, 상원사는 우리에게 친숙한 사찰이었다. 상원사를 오르는 길이며 주변 숲속도 30여 년 전의 고즈넉하고 소박한 풍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속세의 경계는 한참이나 밀려나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저리 무섭게 치고 오를 때 나는 무얼하며 살았을까….


수많은 젊은이들과 꿈을 공유하던 치악고시원과 고시원을 운영하던 아주머니는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 자취소리는 우리 가슴 속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달리기를 하던 재관 형의 건각 속에도 굳은살처럼 여전히 박혀 있었다. 아주머니도 우리 만남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듬직하였던 재구 형을 보며 “왜 그리 안 늙었어요? 그 조그맣던 딸이 벌써 두 아이 엄마라고요?” 하시며 놀라워할 듯도 하였다. 우리 다음 만남을 아주머니는 우리보다 더 기다리실지 모른다. 그땐 아주머니가 가장 보고 싶어 할 용규 씨도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혹여 더 연락이 된 누군가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항복, 경헌, 홍석, 근승 등등 뿐만 아니라 치악고시원에서 잠시 젊은 날을 살랐던 그 누구도…. 여담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거리 하였던 그 검사도 치악고시원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공부하던 때의 열정을 지펴 다시 한 번 삶의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죽을 때까지 뜨겁게 살아야 인생이니까.

그곳은 혼자라도 종종 들러야 할 곳만 같았다.

이런 시간을 만들어 준 몽재 형에게 특별히 감사하다.


해드림출판사 이재욱(필명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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